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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문학] Dark Knight

적당히변태

18.06.13 19:58:23추천 25조회 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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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처럼 꾸물거리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냥 웃어보였다. 우스갯소리로 힘들 때 웃는 사람이야말로 1류라 하지 않는가.

 

"하, 이게 나라야? 이게?"

 

옆에서는 김이 이게 말이 되느냐며 투덜거렸다. 지방선거 결과에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여배우 만났지. 누군 못 만나서 안 만나나?"

 

뒤에서 다소 경박한 언사로 끼어든 이는 장씨였다. 장씨는 최근들어서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뭐,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지.

누군가가 장씨의 말을 듣고 몰래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몰래라는 말이 우습기도 하다.

내가 이미 봐버렸으니까.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었다.

 

우리 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배 양은 이런 분위기를 몇번이나 겪으면서도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또 전화가 왔다며 방을 나간 것이다.

 

나도 그들에게 기자들을 적당히 상대하라고 전한 뒤, 당사 뒷편으로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

 

당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정경이다.

녹슨 자판기, 주머니에는 300백원.

그러나 자판기의 커피는 400원이었다.

 

"무슨 커피가 이렇게 비싸?"

 

나는 혀를 차며 담배를 빼물었다.

 

그 때였다.

 

"아저씨네가 올린 거잖아요."

 

내가 고개를 돌리자,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모를 남자애 하나가 울타리 너머로 나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뭐?"

 

"아저씨네 정당이 올린 거잖아요. 이 말도 안되는 물가, 임대료 전부 다...!"

 

나는 문득 그 아이가 귀여워져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너가 그런 건 어떻게 아니? 아직 어린 것 같은데..."

 

"흥, 요즘엔 인터넷 보면 다 알거든요!"

 

나와 말을 길게 하고 싶지 않은 건지, 그 남자아이는 쏘아붙이듯 말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연기 사이로 그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맞다. 네 말이 다 맞아."

 

그 녀석의 말대로다. 나는 그들과 함께 행동했고, 우리는 딱다구리처럼 대한민국이라는 나무를 계속 파먹었다.

 

"그래서 이렇게 됐잖니?"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분에 걸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드디어 내 진짜 표정이 나왔다.

 

'해냈다.'

 

나는 웃었다. 오랜 만에 짓는 진짜 웃음이었다.

그러나 내 웃음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전화기가 울리는 것이다.

쯧, 오랜만에 시원하게 좀 웃어보려고 했는데... 도와주질 않는군.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포탄의 불바다를 무릎 쓰면서
고향땅 부모형제 나라를 위해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멸공의 휏불'을 전화벨소리로 해두자는 것은 장씨의 아이디어였다. 이런게 노출되면 노인네들 표를 더 모을 수 있다나?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진짜 한심한 작자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벨소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핸드폰을 바라봤다. 스마트폰 화면에 이니셜 한 개만 보였다.

 

M

 

그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무슨 일로 전화했나? 사람들이랑 있다가 걸렸으면 어쩌려구?"

 

내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어느새 다 태워버린 담배를 계속 물고서 흐린 하늘만 바라봤다.

당신 속도 저 하늘과 같겠지. 그럴 필요 없는데...

 

한참만에 그가 물었다.

 

-...괜찮나?

 

"내가 결정한 일이야. 이제 다시는 전화하지 말게."

 

-하지만... 자네는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닐세!

 

"대통령은 더 큰 걸 봐야하는 법일세. 이만 끊겠네."

 

-잠깐 기다리게, 이봐...!

 

나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이 녀석은 너무 마음이 여린 게 문제다.

훗, 하긴 그래서 그 자리가 어울리는 거겠지.

그리고 나는... 이 자리가.

 

나는 내가 선택한 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정당'을 모두 끌고서 저 깊은 심연속으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무를 살릴 유일한 길이다.

 

나무를 파먹는 딱따구리를 해치울 방법...

뻐꾸기처럼 그들의 알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나는 딱따구리 둥지에 낳은 뻐꾸기 알.

이제 내 주변에 있는 딱따구리의 알들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릴 차례다.

 

나는 담배를 버리고 돌아섰다.

그 귀엽던 고등학생이 있던 울타리로부터, M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마침 보좌관 하나가 날 찾으러왔다.

 

"홍준표 대표님, 김 의원님께서 찾으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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