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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전율 카핑베토벤 리뷰

헐럴러

08.08.24 05:22:06추천 4조회 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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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
최근 계속되고 있는 저의 클래식 음악붐에 그럴싸한 영화였거든요. 제목부터 '베토벤'인데다가 해외에서의 평도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습니다. 구미에 딱 땡기더군요.



 의외였습니다. 이 영화는 작곡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베토벤이 작곡한 곡을 연주자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배끼는(Copying) 일을 하는 한 작곡가 지망생에 관한 얘깁니다. 실제로 그 시대에 이러한 '카피스트' 들이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베토벤의 악보는 정말 '악(惡)보'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베토벤은 그 카피스트 여성이 떳떳한 작곡가로 거듭나는 데에 영감을 주는 멘토(Mentor)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드 해리스가 베토벤을, 다이앤 크루거가 카피스트인 아나를 맡았습니다.

영화는 작습니다. 러닝타임도 104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를 보면 딱 맞아요. 영화는 거의 귀먹어리가 된 베토벤이 장년의 걸작인 교향곡 9번 '합창' 초연을 나흘 앞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초연은 나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베토벤은 5악장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죠. 게다가 원래 베토벤 악보의 카핑을 맡은 사람은 노쇠해서 움직일 수조차 없습니다. 이때 아나가 등장합니다. 베토벤 악보를 배끼는 일을 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작곡실력을 베토벤에게서 인정받으려는 목적이죠. 하지만 베토벤은 괴팍하기 그지 없습니다. 평생에 이룬 성과 때문에 자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고, 타 작곡가의 곡을 보고는 비웃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없는 조카에게 피아노 리사이틀을 강요하고, 아나가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까기도 하죠.
이런 우여곡절이 있지만 결국 베토벤은 합창 교향곡의 초연에 성공합니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베토벤은 지휘를 하면서도 오케스트라 중간에 아나를 두고, 그녀의 지휘를 참조합니다. 아나가 합창교향곡을 배끼면서 곡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초연 이후, 베토벤은 아나에게 '음악에 영혼을 넣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베토벤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 음악을 작곡했던 것처럼, 아나 역시 동이 트는 아침 들판을 걸으면서 영감을 얻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는 [아마데우스]처럼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것도,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처럼 베토벤이 사랑했던 여인을 찾는 영화도 아닙니다. 베토벤이 공동 주인공이긴 하지만 영화가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23세의 젊은 여성 작곡가가 어떻게 성장하느냐입니다.

영화는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아나와 베토벤에게 주여진 시간은 합창교향곡 초연을 앞뒤로 일주일입니다. 둘은 철저한 직업적 관계입니다. 물론 갈등은 있죠. 괴팍한 베토벤이 공격하면, 현명한 아나가 수비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둘이 급격히 사랑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습니다. 영화 거의 마지막에 베토벤이 'Wash Me' 라고 하자, 아나가 베토벤의 다리를 씻겨주는 장면이 있습니다만 사랑으로 치부하기에는 과장된 해석이죠. 아나가 진심으로 존경했던 작곡가에 대한 예의를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작은 영화지만, 여전히 음악이 주는 효과는 큽니다. 영화는 [불멸의 연인]처럼 베토벤의 걸작들이 쏟아져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 "10분 동안" 합창교향곡의 하이라이트만 보여줍니다. 74분의 곡을 10분으로 줄이면서 특히 인상적인 선율만 그대로 담습니다. 아무리 클래식 음악에 무지했다 치더라도 이 부분에는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당장 레코드가게에 달려가서 합창교향곡 음반을 사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듭니다. 이 시퀀스는 아마 두고두고 계속해서 돌려볼 것 같습니다.

간간이 나오는 농담들은 재밌습니다. 베토벤이 로시니의 음악을 듣고, 도대체 이게 뭐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장면은 특히 그렇죠. 베토벤의 옆집에 사는 여인이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베토벤이 영감이 얻으려(?) 교외로 나가자 옆집 여인이 '모처럼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깁니다. 아나가 묻습니다. 시끄러워서 이사갈 생각을 한 적은 없냐고. 여인이 대답합니다. "이사? 온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해요. 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듣는 사람이에요. 세계 최고 작곡가의 음악을요." 만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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