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특급’ 박찬호(39) 선수가 30일 ‘저는 참 운이 좋은 녀석“이라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94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1997년 한국에 IMF 위기가 닥쳤을 때 전 국민의 희망이었던 투수.
LA 다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뉴욕 양키스,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거치며 메이저리그 동양인 투수 최다승(124)을 기록했던 한국 최고의 투수.
이후 야구가 좋아 일본 오릭스와 한국 한화 이글스를 거치며 나이와 세월에 좌절도 겪었던 선수. '등번호 61번 찬호 박'의 야구 인생 19년을 사진 28장으로 정리했습니다.
공주고 시절 박찬호 선수.
한국인 최초 메이저 리그 진출. '뽀송뽀송'
'대통령들'의 만남!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자신과 닮은 팬도 만남.ㅋㅋ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한국 야구 우승의 주역.
98년 아시안 게임 우승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박찬호 선수. 기본 훈련만 받으러 온 귀국길에 계란 세례.
150㎞대 후반 강속구와 낙차 큰 슬러브로 2000시즌 18승10패에 방어율 3.27을 기록. 미국 최고의 투수로 올라섬.
다저스 매거진 표지 모델로 선정!
하지만 박찬호 하면 역시 '이단 옆차기' '아뵤!'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와 약 730억원에 5년 계약을 체결. 하지만 저조한 성적으로 '최악의 계약'이었단 평가를 받음. 이후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을 옮겨가며 '역투'. 슬럼프도 있었음.
2009년 한국 야구 대표팀 은퇴. 하지만 2009년 완벽 '부활투'를 선보이며 필라델피아 필리즈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 2010년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 승인 124승 기록. 이후 메이저리그를 은퇴하고 이승엽 선수가 있던 일본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 하지만 '세월'을 속일순 없었음. 2012년 자신의 고향 연고팀인 한화로 입단. 국내 첫 프로야구팀 입단. 박찬호 뒤에 류현진 있다. 역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