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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아시나요?

진중귄

13.04.01 16:26:54추천 31조회 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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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 처단 이후 체포되는 모습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하얼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3발의 총알이 이토 히로부미를 관통하였습니다. 이토는 그 자리에 쓰러졌고 30분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러시아의 관할지 하얼빈에서 일어났습니다.



왜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관할지인 뤼순으로 옮겨가 재판을 받아야 했을까요? 


사실 재판권은 일제가 아니라 러시아에 있었습니다. 국제법상 재판권은 범죄 발생지에 있는데요. 따라서 하얼빈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재판권은 러시아에 있었던 것이죠. 일제는 러시아를 압박해서 안중근 의사의 재판권을 얻어내었습니다. 러일전쟁의 패전국이었던 러시아는 일제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었고 결국 재판권을 넘겨줍니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관선 변호사는 물론 검사, 판사, 통역관, 심지어 방청인까지 일본인으로 구성합니다. 



일제는 왜 이렇게 안중근의사에게 불공평하게 재판을 이어갔던 것일까요?


당시 세계 각국에서 안중근의사의 재판을 취재하러 몰려들었습니다. 일제은 이 기회를 살려 대한제국 침탈의 정당성을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부당성을 만방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재판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 제국주의와 안중근 의사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부터 안중근 의사가 재판에서 한 말들을 중심으로 이토 처단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말하는 이토히로부미 처단 이유


나는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으로서 적장을 쏜 것이므로 나에게 적용할 법은 일본, 청국, 한국 어느 한나라의 법이 아니라 육전 포로에 관한 국제법이오. 왜 나를 일본법으로 처리하는 것이오?


안중근 의사는 재판과정에 적용되어야 할 법이 일본법이 아닌 국제법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이유는 안중근 의사의 신분이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이미 대한의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재판에서는 이에 대해 모른 척을 했습니다. 안중근의사를 상대국의 군인이 아닌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면서 말이죠. 왜일까요?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민들이 일제의 통치를 바라고 있다고 선전했는데요.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이 이토를 죽인 것이 인정된다면 그동안 자기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 만천하에 들통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유로 이토 공을 살해하였는가? -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 대한의 독립 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 의용군 사령 자격으로 총살했다. 안응칠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다. 


일제는 재판과정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이토를 죽였다고 말한다면 사형을 면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거듭 자신의 신분을 말하며, 이토 저격이 독립전쟁의 일환이고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은 무엇일까요?


동양평화사상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독립에 기초한 평화를 말한 개념이었는데요. 안중근의사가 감옥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동양평화론의 주장 요약

1. 일본은 뤼순을 중국에게 돌려준다.

2. 뤼순을 한 중 일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든다.

3. 세 나라에서 파견한 대표로 평화회의를 조직하여 2개 국어 이상의 언어를 배우게 한다.

4.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화폐를 만든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으며 동양의 평화를 무너뜨렸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란 각 나라가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면서 상호간의 협력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야욕으로 동양의 평화는 무너졌고, 안중근 의사는 일본 제국주의 그 중심에 서있던 인물인 이토를 저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중근의사는 어떤 근거로, 이토히로부미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사형을 언도받은 후 안중근 의사는 어떤 두려움도 비치지 않은 얼굴로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15가지를 말했습니다.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한 죄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대한제국의 정권을 빼앗은 죄

  6. 철도, 광산, 산림 등을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 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

  8.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한국인들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 유학생들의 유학을 방해한 죄

11. 국어, 역사책등 교과서를 모조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트린 죄

13.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싸움이 일어나는데 태평한 것처럼 천황에게 

      거짓보고를 올린 죄

14. 동양(아시아)의 평화를 깨트린 죄 

15. 현 일본 천황(메이지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고메이 천황)을 죽인 죄




이토히로부미는 죄목은 이렇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철저히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를 죽였습니다.


 재판의 결과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전 세계로 뻗어갔고 안중근 의사의 사상은 대한제국의 국민들에게 저항의 불씨를 심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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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4월16일자 찰스 모리머 기자의 ‘안중근 공판 참관기’

영국의 언론사 <더 그래픽>은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파렴치한 독재자로 만들며 승리자가 되어 떠났다.’는 말로 안중근 의사의 재판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에서도 하얼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을 명중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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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직전의 안중근 의사



듣거라. 내가 죽거든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조국의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 장사 지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도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모두 국민된 의무를 다하고 힘을 다해 독립을 이루라고 전해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백년이 더 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타국의 차디찬 감옥에 앉아 안중근 의사는 얼마나 오랫동안 조국을 그리워했을까요.

 

- 안중근의 유묵 -

 

①‘天與不受 反受其殃耳(천여불수 반수기앙이)’. 종이에 먹, 136.8X32.2㎝, 1910년 2월, 보물 569-24, 개인소장. ‘하늘이 주는데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을 뿐이다’라는 뜻으로 제국주의 일본이 하늘이 주는 것, 곧 천명(天命)을 받지 않으면 반대로 그 재앙을 받으리라는 경고다. 이 글씨의 소장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정갈히 하고 이 앞에서 절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②‘天堂之福 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 종이에 먹, 136.2X33.2㎝, 1910년 3월, 일본 야요이미술관 소장.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라는 뜻. 삶과 죽음, 극락과 지옥, 결코 둘이 아니다. 현세에서의 생명은 곧 마감하나 천당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비운 마음을 드러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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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은 '백 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라는 뜻이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은 안중근 의사 자신의 명언으로'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뜻이다

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은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하네' 자연의 섭리는 그대로이나, 세월따라 사람들은 변하고 있다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걱정하는 구절이다.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은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가난하고 천한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안의사의 인생관이 반영된 말이다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 여기서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은 안중근 의사가 100년 전에 여순 감옥에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자신의 철학과 심경을 피력하였던 간절한 마음이 읽혀지는 내용이다.

용공난용연포기재

용공난용연포기재(庸工難用連抱奇材,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다루기가 어렵다) 자신의 능력을 생각하지 못하고 설쳐대는 사람에게 경계가 되는 말이다. 배움이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라는 뜻이다. 1910년 3월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글씨이다. 말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이다.

 

<2011년 짱공 '브라보걸즈'님의 자료>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그의 어머니께서 보내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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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화재가 되었던 현재의 젊은이들 역사안보의식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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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33명 가운데 단 4명만이 안 의사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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