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볕이 뜨거운 어느 여름 날 공원을 여자 친구인 효린이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걷던 중 효린이가 내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오빠 나 얼마나 사랑해?""내가 너 사랑하는 것이 미안 할 만큼~"이렇게 묻는 효린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정말 효린이가 날 사랑하니깐 이렇게 묻는 거겠지?-내가 사랑하는 만큼 내 여친도 날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그 자체였다.그리고 시간이 지나 찬바람이 불던 늦가을 이었다.효린이와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애틋함은 더 해 갔지만 효린이는 더 시들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결혼을 전제로 만나다 얼마 전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우리 집에 방문했을 때 그리 크지 않은 우리 집을 보고 실망을 하던 모습을 봤었고, 처음 보는 그 표정에 가슴이 아팠다.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같이 나서면서 효린이가 물었다."오빠 나랑 결혼하면 집은 사 올 수 있는 거야?"효린이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묻는 말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전..세 정도는 내가 모은 돈으로 될 것 같은데..""그래?? 전세??""응..""그럼 전에 결혼하면 나 차 사준다며..""결혼해서 돈 벌어서 사 주려고 했지..그리고 차 정도는 할부로도 살 수가 있어~"그 때 점점 어두워지던 효린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났다.그 후로 연락도 뜸해지고, 만나려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나를 피하다 오늘 겨우 만난 것이었다.예전에는 종종 나에게 사랑하냐고 묻던 효린이 그런 말은 요즘 하지 않았다.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손님이 온다며 일찍 들어가려는 효린에게 예전에 효린이 나에게 물었던 것처럼나도 효린에게 물었다."효린아..너 나 사랑해?""오빠 나 집에 일찍 들어 가봐야 해..""들어가더라도 대답은 하고 들어가~""모르겠어..오빠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미안해..."효린의 미안하다는 말이 이제 그만 만나자는 그런 말로 들렸기에 전혀 눈치를 못 챘는 것처럼 되물었다."뭐가 미안해~ 원래 만나면 다 그런다더라~~일찍 들어가야 하지?""오빠..미안해..""뭐가?""오빠에게 애정이 생기지 않아..""예전에는 나 사랑한다며~""언제? 내가 그런 말 한 적이 있었나? 그냥 오빠가 날 사랑하는지 물어만 봤던 기억인데..""그럼 날 사랑하지 않고 그냥 내가 널 사랑하는지 물어만 봤단 말야?""그래..나도 그 때 약간은 사랑하는 줄 알았어~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더라.."냉정하게 말하는 효린의 말에 기운이 빠지며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그랬구나..그랬었구나..""오빠.. 우리 더 만나면 서로가 힘들 것 같은데..""아..냐..난 힘들지 않아.."내가 힘없이 하는 말에 효린은 비웃듯 웃으며 한 쪽 입술이 올라간 모습으로 말했다."지금 나에게 매달리는 거야?""응..나 지금 효린이에게 매달리는 거야..이렇게 매달리지 않으면 오늘이 마지막 같아서..""그래 그럼 내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바껴 오빠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생기면 연락할게~"그렇게 효린이는 마지막을 다음에 또 만날 것처럼 말을 던지고는 집에 가버렸고, 마지막 던진 그 말 한마디에 언제 효린에게 연락이 오나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효린이와 마지막으로 본 지 거의 한 달이 됐을 무렵 친하게 지내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형~ 요즘 뭐해요?""해철이네~ 웬일~""기분 좋은가 봐요~ 목소리 좋네요~ 요즘 별 일 없죠?""별일 없지~ 요즘 그냥 저냥 시간 때우고 있어~""형한테 할 말이 있는데 저녁에 술 한 잔 어때요?""좋지~ 그런데 무슨 할 말이야?""이따가 만나면 이야기 해 줄게요~"해철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원룸인근으로 왔고, 같이 동네 근처의 막창 집으로 같이 갔다.막창과 소주를 시켜 두어 잔 마셨을 때 해철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요즘 효린이랑 안 만나요?""응..그냥 효린이랑 안 좋아..""헤어졌어요?""아니..안 헤어졌는데?""사실 어제 저녁에 효린이가 어떤 남자랑 손잡고 걸어가는 걸 봤거든요.."해철의 말을 듣고 먹으려고 입에 넣으려던 막창을 떨어뜨렸다."효린이 다른 남자 생긴가 봐요..""그렇구나..."가슴이 아파오고 효린에게 실망을 하는 표정이 비쳤는지 해철이는 나에게 소주를 권했다."한 잔 털어 넣고 다 잊어요~ 형~""...."조금 전까지 달게 넘어 가던 소주가 목넘김이 너무 쓰렸다."효린이도 눈이 삐었지..형 같은 남자가 또 어디 있다고..""....""키 크지~ 얼굴 잘 생겼지~ 성격 좋지~"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띄어주려 해철이가 부단히 애쓰는 해철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난 돈이 없잖아..""형~ 우리 나이 때는 돈이 많으면 이상한 거예요~""됐어~ 그만해..""에이~ 그럼 여자는 여자로 잊는데 새로 여자를 만나 봐요~""됐어..그냥 조용히 당분간 살아야겠다.."해철이도 소주를 한 잔 털어 넣으며 말했다."형 그럼 기분 전환 할 겸 우리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요~""인터넷 카페?""제가 등산을 하는 카페에 가입했는데.. 산도 타면서 효린이도 잊고 머리도 식히고~"해철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그거 어떻게 하면 되는데?"술을 마셔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해철이와 난 우리 집으로 향했고, 우리 집에 들어서자마자해철이는 컴퓨터로 자기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에 나를 강제로 등록 시켜 버렸다.내 컴퓨터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하던 해철이가 침대에 누워 있는 나에게 물었다."형 닉네임 뭐 할까요?""그냥 아무거나 해..아니다..효린이 미친년으로 해줘"술이 취해 효린의 욕이 그대로 나왔고, 내 말에 해철이는 미친 듯 웃더니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저 새끼 눈치 없이 진짜로 닉네임을 그렇게 하는 거 아냐?-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해철이 옆에 서서 모니터를 보니 진짜로 효린이 미친년으로 되어 있었다."야!! 진짜로 이렇게 하면 어떡해!!""에이~ 어때요 형이 하라면서요~ 그리고 이렇게 해야 형이 효린이 생각할 때마다 생각나서 정이 떨어지죠~"-그래..그럴 수도..내 울분을 담아 이것으로 내 닉네임을 한다...설마 다른 사람이 나 보지도 않을 거니깐..- 그렇게 인터넷 가입을 하고 해철과 나는 술에 취해 골아 떨어졌다.그리고 얼마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였다.-오늘 금요일이니깐 족발이나 하 나 시켜서 소주나 마셔야겠다..-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서려는 순간 해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형~ 뭐해요~""이제 집에 왔어~""아 잘 됐네요~""뭐가 잘돼?""저 시내에 있는데 술 한 잔 해요~""넌 무슨 맨 날 술이고~ ""에이~ 목소리가 술 땡겨하는 목소리인데~~"해철이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나도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이 새끼~ 어떻게 내 맘을 그리 잘 아냐~""시내에 나와요~""그래 바로 갈께~""바로 오지 마시고 좀 씻고, 머리도 이쁘게 해서 나와요~"-엥? 혹시 나에게 여자 소개 시켜줄려고 그러나??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모르는 척 알았다고 말하고, 바로 샤워하고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을 입고해철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나갔다.약속장소에 도착을 하니 해철이만 있고, 여자는 없었다.-아...내가 이쁘게 나오란 말에 속았구나...-속았다는 생각으로 해철이에게 다가가자 해철이는 내 앞으로 웃으면서 걸어오며 말했다."와~ 승훈이형~ 씻으니깐 장동건 저리가라네요~""안 씻어도 장동건 저리가라 거든~""하여튼 우리 형 말빨하나는 장난이 아니셔~""에이그 됐고~ 어디갈래?""그냥 저 따라 오세요~ 아는데 있어요~"해철이는 같이 걸어가며 주저주저 말이 많았고, 난 혹시나 여자가 나올 거라는 기대에서 약간의 실망을 한지라 그냥 조용히 해철이의 말을 들으며 옆에서 따라 걸었다.해철이를 따라 간 곳은 1층과 2층으로 된 호프 집이였고, 해철이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2층에 올라가니 여러 테이블이 붙어 있었고, 일행처럼 보이는 남녀가 20명 가까이 있었다.-뭐지?? 이 분위기는??-그 때 우리 앞으로 남자 한 병이 걸어왔고, 우리에게 물었다."혹시 러브마운틴 회원이신가요?"-엥?? 혹시 인터넷카페 모임?? -짧은 시간에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해철이가 말했다."네~ 오늘 시내에서 술 마신다고 그래서 나왔어요~"우리 앞에 있던 남자는 해철이와 나를 안쪽으로 자리배치를 해 주었고, 우리는 안내해주는 곳에 앉았다.벌써 술판이 벌어져 있는 상황이었고, 우리 쪽에 걸어온 남자가 오늘 모임을 주선한 남자였다.그 남자가 우리 쪽을 보며 말했다."자기소개 하셔야죠~""네~"해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저는 성당동에 사는 산타는 스머프 입니다~"-산타는 스머프??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니고 별명을 말하는 건가??-해철이는 그렇게 간략하게 소개를 했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그리고 20여명의 남, 여 들은 나에게 시선이 모였다.-아..내 닉네임이 ...효린이미친년인데...아..말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이렇게 당황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해철이가 조용히 말했다."형..일어서서 소개해요~"해철이 말에 더 당황을 해서 일어서서 말했다."효린이미친년!!"어디에 사는 누구라고도 말하지도 않고 바로 그렇게 닉네임을 욕 하듯이 말했다.그리고 자기소개하기 전까지 그 어수선한 분위기는 물바가지로 쫙 뿌린 듯 조용했다.가만히 서서 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마른침 삼키는 소리까지 다 들릴 듯 숨이 막혔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