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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로오데

21.10.30 18:30:15수정 21.10.30 19:50:56추천 8조회 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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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우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만은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러시아 하면은 도스토예프스키 아니면 톨스토이를 가장 많이 이야기 합니다. 어떤 분들은 두 사람을 합쳐서 톨스토예프스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중반에 활동을 했지만 20세기 그리고 21세기 까지 영향력이 지대한 작가입니다. 실존주의 작가들, 가톨릭 성직자들, 동방 정교회 성직자들 그리고 니체, 카프카 작가, 사상가, 프로이드, 칼 융 게다가 천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 까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어디선가에 서는 누군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열정적으로 연구하면서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19세기에 활동했던 러시아 작가가, 아직도 우리에게 울림을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인간 존재의 토대가 되는 질문을 하고 독자들에게 답하도록 초대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영향력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인간에가 가장 근원적인 존재의 이유 그것은 자유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죄와 벌은 자유의 문제를 재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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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년 11월 11일~ 1881년 2월 9일)

 

 

별명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잔인한 천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잔인하다‘는 것은 수사적 표현입니다. 너무나도 예리하게 심리를 분석하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접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잔인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인간 영혼의 선견자‘ 이런 표현도 많이 씁니다. 영혼 하면 보이지도 않는 것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은 평생 연구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돋보입니다. 다른 리얼리즘 작과들과는 달리 무엇을 먹고 사느냐 관심 보다는 주인공이 어떠한 영적인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조망을 갖고 있습니다. 

- ‘러시아 문학 사상 가장 종교적인 작가’ 그는 러시아 정교, 동방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에 몰입해 있던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이 정교 신앙이 면면히 심어져 있습니다.

- 영국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유명 인사들을 두 가지로 분리 했습니다. 여우형고슴도치형 두 가지로 분리 하였습니다. ‘여우형’은 활동적이며, 관심도 많고,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한 가지 일에는 몰두 하지 못하는 형 이며, ‘고슴도치 형’은 단일한 목표로 사는 것, 단일한 원칙을 가지고 통일된 사고를 통해서 깊이깊이 들어가는 유형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형적인 ‘고슴도치 형’ 인간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자유에 관해서 고슴도치처럼 파고들었습니다. 

 

 

 

돈과 자유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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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하면은 심오한 천재 작가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심오한 작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돈 때문에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항상 돈에 쪼들리는 사람 이였습니다. 낭비벽도 있고 도박벽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나치게 관대했습니다. 돈에 대한 경제관념이 전혀 없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항상 돈을 헤프게 쓰고, 쪼들리고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많이 쓰게 된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인간을 읽고 사회를 읽는데 천재적인 이었던 작가는 돈도 정확하게 읽고 돈을 해부했습니다. 이와 같은 돈에 대한 이해는 그의 작품 속에 면면히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빈곤에 관한 성찰, 분배문제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도 있지만 돈에 대한 문제가 아주 빈번히 나옵니다. 가령 주인공의 월급이 얼마다, 이 물건은 얼마짜리다, 지참금은 얼마다, 방세는 얼마다 이러한 돈에 대한 문제가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는 살인자가 살인을 할 때 쓰인 칼의 가격 까지 아주 시시콜콜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 주인공들은 돈으로 연결됩니다. 돈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고, 죽이고, 자살도 합니다. 이러한 돈의 관계로 인간이 연결 됩니다. 인간의 가장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돈의 문제를 자유의 문제와 결부 시켜서 가장 흥미롭고, 심오한 소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동시에 같이 생각 했던 것은 자유의 문제였습니다. 이 자유에 관한 생각은 시베리아 감옥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싹트기 시작 합니다. 감옥 만큼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수감생활을 하면서 다른 수감자들을 보면서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돈은 주조된 자유다(coined liberty). 그래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소중하다.” -죽음의 집의 기록 中

 그는 수감자들을 관찰하면서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욕구라는 것을 이해 합니다.

식욕과 같이 없으면 죽는것 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유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돈은 이러한 자유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감자들은 모든 생필품이 지급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 하는 것을 봅니다. 감옥 안에는 고리대금업자도 있고 시장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 쓰고 하는 것에서 대하여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래서 돈과 자유는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돈과 자유를 평생 탐구 하게 됩니다.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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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 시절

 

 도스토예프스키 아버지는 군의관 이였습니다. 어머니는 상인가문에 독실한 정교 집안입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근검, 절약을 모토로 삼은 사람으로 자식에게 항상 돈에 대한 절약을 강요 합니다. 그러한 아버지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청소년기부터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에 입학 시킵니다. 이유는 졸업 후 취직이 잘되기 때문이 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의지와는 무관하게 입학하게 됩니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항상 사색하고, 과묵한 청년 이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낭비벽이 싹트기 시작 합니다.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그와 똑같이 살고 싶어서 이 시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항상 돈을 청합니다. “아버지 모두들 새 깃털 달린 모자가 유행이니, 저도 모자를 사야하기 때문에 돈 좀 보내 주십시오.” 도스토예프스키 그냥 과시하고 싶어서 남들과 똑같이 부자처럼 보이이기 위해서 돈을 썼습니다. 이러한 과시형 소비는 작가가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학교 졸업 후 공병 소위로 임관하게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상당한 유산이 남게 됩니다. 가족 전체에 분배되고 신탁 자금으로 조금씩 지급되었습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 유산 집행인에게 부탁하여 유산 전액을 한번에 받게 됩니다. 하지만 돈을 탕진하게 됩니다. 공병 소위 봉급으로는 생활이 유지가 안되었으며 항상 가난에 찌들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항상 자신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작가가 되면 한목에 큰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원고 여백을 보면 조그마한 숫자들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그건 전부다 돈 계산을 한 것입니다. 원고지 1매당 얼마, 천매를 쓰면 얼마. 집 한 칸의 방세가 얼마 이러한 계산을 적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첫 작품이 나오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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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23세 때 최초의 장편 소설을 쓰게 됩니다. 내용은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하급 관리가 아름다운 소녀와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며 서간체 소설(편지형식)입니다. 작품은 호평 속에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당시 가난에 관련된 소설은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주로 가난에 대한 사회학, 경제학 적은 측면만 파고들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빈곤에 심리학을 탐구합니다. 소설 속에서 가난한 관리는 이야기 합니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잘 못 먹고, 잘 못 입는 다는 것은 불편함이다.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의 눈초리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나를 힘들게 한다. “

 이러한 부분이 바로 20세기 많이 지적이 되었던 심리적 상대적 빈곤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돈을 벌지만 또다시 탕진하여 가난하게 됩니다. 출판사들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다음 작품을 부탁하고 그는 선불을 받아쓰는 나쁜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 평생 선불로 살게 됩니다. “나는 선불을 받지 않고 작품을 쓴 적이 없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 ‘분신’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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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이시기 러시아 지식인들, 젊은이 들은 반체제 인사들이였습니다. 니콜라이 황제의 전제정치에 젊은이들은 폭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자주 가졌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그 모임의 일원 이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시‘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 서클은 차 한 잔 마시며, 공상적 사회주의 이념을 이야기 하는 모임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어느 날 불온서적을 모임에서 낭독하게 되고 당국의 첩자에 의해서 고발당하고 모임 33명은 체포당하게 되고 반란 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진행 중 황제의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옵니다. 

 형집행 정지를 명합니다. 대신 내린 선고는 4년 징역, 5년 3개월의 사병 생활이 내려집니다.(시베리아 옴스크) 이 사건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발작이라는 지병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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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직전의 도스토예프스키

 

 

 

유배(1849 ~ 1859)

 

 시베리아 옴스크로 수감 생활을 하게 된 도스토예프스키는 3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수감된 살인자, 사기꾼들 사회 최하층의 사람들 내면을 관찰 합니다. 두 번째는 유일하게 반입 될 수 있었던 ‘성경책’을 4년 동안 읽게고, 이후 작품 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자유에 대한 사색을 합니다. 관찰사색독서 이 3가지가 시베리아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일입니다. 이전 낭만적 공산주의를 꿈꾸던 사람이 아닌 지옥을 여행하고 돌아온 단테와 같은 사람으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이후 소설은 자유, 신앙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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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생활 중 마리아 이사예바라는 여인을 만나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결혼하고 페테르부르크에 돌아 왔지만 여인은 병약했고 폐병에 걸려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수슬로바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이 여성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20살이 어린, 성격, 개성, 지식이 뛰어난 여인 이였습니다. 수슬로바에 빠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가던 중 잠깐 비스바덴(도박장)에 들리게 됩니다. 여기서 돈을 딴 이후 도박에 맛이 들어 10년 동안 도박중독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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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와중에도 계속 소설을 쓰게 되고, 글들은 언제나 졸속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듬어진 소설이 한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잡지에 연재하는 소설도 많았습니다.(연재하고 원고료 받고를 반복) 앞뒤에 일관성이 없는 소설이 꽤 많고 1부에 나왔던 올가가 3부에서는 안나로 바뀌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3천 루블(5천만 원)의 빚이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이는 돈을 갚을 능력이 안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출판업자가 접근하여 3천 루블을 선불로 줄 테니 11월까지 장편소설 1편을 써달라고 합니다. 급해서 쓴 계약서는 악덕 계약서였습니다. 책을 완료하지 못할시 위약금은 물론이고 이후 출간되는 모든 소설의 판권은 그 출판사가 가지게 된다는 계약 조건 이였습니다. 3천 루블을 받은 이후 빚도 갚고 도박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10월 초가 되어 버립니다. 친구들은 걱정이 되어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해 해결방안을 냅니다. 친구들 끼리 소설을 1챕터씩 각자 쓰고 이를 모아 도스토예프스키가 최종 편집하기로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양심을 문제로 거절하게 됩니다. 친구들은 최후의 제안을 하게 됩니다. 속기사를 보내 줄 테니 구술을 하면 속기사가 적어 주는 방식으로 하자고 합니다. 탐탁지 않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못해 승낙하게 됩니다. 속기사가 도착하고 일주일간은 도스토예프스키는 거의 의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속기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열혈팬 이였습니다. 속기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일으켜 세워 작품을 쓰게 만듭니다. 이후 받아 적은 속기록을 집에 가져 가서 다시 원고에 적어서 차곡차곡 쌓여 가게 됩니다. 일류 역사상 가장 졸속으로 쓰인 작품이 10월 29일에 나오게 됩니다. [노름꾼]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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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살 연하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15년 동안 결혼 생활 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는 경제관념이 철저한 여인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제권을 가지게 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글만 쓰게 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들이, 이 시기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말년에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고, 도박중독증도 치유 되었습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을 하러 나가면 오히려 돈을 더 주고, 도박 좀 더하고 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책감으로 인해 도박을 중단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사망 후 부인은 그를 추모하고 기록하는데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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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도스토예프스키는 각혈을 하기 시작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병 때문에 술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담배는 많이 피웠습니다. 평상시에도 가끔 각혈을 하기 도 하지만 이날 만은 의심이 들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성경책을 가져 오라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습관중 하나가 성경책을 가지고 점을 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성경책을 아무데나 펼쳐서 거기에 쓰인 것에 따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날 읽은 것은 “예수계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하고 대답하셨다” -마태오 복음서- 3장 15절

 이 구절을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을 예감하고 가족을 불러 종부성사를 준비하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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