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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택쥐페리-어린 왕자

l죠리퐁l

21.12.07 08:27:26추천 3조회 1,614

나는 이렇게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오던 끝에. 여섯 해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났다. 모터에서 무언가가 부서진 것이다. 기관사도 승객도 없었던 터라 나는 그 어려운 수리를 혼자서 감당해 볼 작정이었다. 나로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다. 겨울 일주일 동안 마실 물밖에 없었다.

 

첫날 저녁, 나는 사람이 사는 못에서 사방으로 수만 리나 떨어진 사막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뗏목을 타고 을러가는 난파선의 뱃사람보다도 훨씬 더 외로운 처지였다. 그러니 해뜰무렵 이상한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웠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목소리는 말했다.

"저... ...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뭐?"

"양 한 마리만 그려줘... ..."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섰다. 나는 눈을 비비고 주위를 잘 살펴보았다. 아주 신기한 꼬마 아이가 엄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그의 초상화가 있다. 이 그림은 내가 훗날 그를 모델로 그려 낸 그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내 그림이 그 모델만큼 멋이 있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보이지 않는 보아뱀을 그릴 것밖에는 달리 그림 공부를 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아무튼 나는 놀란 눈을 위둥그레 뜨고 홀연히 나타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방으로 수만 리나 떨어진 곳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본 이 아이는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곤이나 굶주림이나 목마름에 시달려 녹초가 된 것 같지도,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방으로 수만 리나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길잃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입을 열 수 있게 되자. 겨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니?"

그러나 그 애는 무슨 중대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아주 나직하게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저기... ... 양 한 마리만 그려줘... ..."

 

터무니없는 일이라도 너무 겅렬한 느낌을 받으면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사방으로 수만 리나 떨어진 데서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판에 정말 멍청한 짓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특별히 공부한 것이라고는 고작 지리와 역사와 산수와 문법이라는 생각이 나서, (좀 언짢은 기분으로)그 꼬마 아이에게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나에게 대답했다.

"괜찮아.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한 번도 양을 그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릴 수 있는 두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에게 다시 그려 주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을. 그런데 놀랍게도 그 꼬마 아이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난 보아뱀의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 보아뱀은 아주 위험하고, 코끼리는 아주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데는 아주 작아서. 나는 양을 갖고 싶어. 양 한 마리만 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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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양을 그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말했다.

"아냐! 이건 벌써 몹시 병들었는걸. 다른 걸로 하나 그려 줘."

 

나는 이 그림을 그렸다.

내 친구는 얌전하게 미소 짓더니, 너그럽게 말했다.

"아이참... ... 이게 아니야.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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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앞의 그림들처럼 퇴짜를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어. 나는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필요해."

 

그때 나는 모터를 분해할 일이 우선 급해, 참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쓱 그어 댔는데, 그게 이 그림이었다.

그러고는 던져 주며 말했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런데 놀랍게도 이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게 아닌가.

"내가 원한 건 바로 이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많이 있어야 할까?"

"그게 걱정이야?"

"내가 사는 데는 아주 작아서."

"아마도 충분할 거야. 내가 그려 준 건 아주 조그만 양이거든."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 이것 봐! 잠이 들었어... ..."

나는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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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생택쥐페리의 대표적 단편 소설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중 하나인 어린 왕자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다양한 독서평이 존재합니다. 귀를 간지럽히는 아름다운 내용과 삽화 덕분에 마치 어린이용 소설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또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가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으면, 왠지 하루 종일 문학적 감수성에 젖어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남자와 여자에 상관없이 어린 왕자라는 소설책은 존재하는 자체로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저자가 서두에 밝혔듯이 어린이에게는 미안한 소설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이 소설은 친절하지 못합니다. 직관적이고 간단명료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어렵고 지루한 책입니다. 시대적 배경이 부족해도 읽기 어렵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라는 혼잣말을 내뱉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유명세의 틀에 갇혀 마치 얼음처럼 우리 가슴에 이미지로만 남아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어린 왕자와 장미꽃의 관계처럼 부여잡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를 고치던 화자는 난데없이 나타난 어린 왕자에 놀랍니다. 이런 곳에 어린아이라니... 화자는 왕자가 양 한 마리를 그려 달라는 요구에 난감해집니다. 비행기 고장으로 가뜩이나 바쁜데, 양을 그려 달라니. 그것도 친절하지 못하게 단호하게 요구합니다. 이런 불친절한 아이를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다면,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서 화자는 어린 시절 자신이 그렸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줍니다. 어린시절 그렸던 보아뱀의 그림이 좋아서 그려줬다기보다 쉽게 그릴 수 있는 단순한 모양의 그림을 선택한 것입니다. 한창 바쁠 때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어른의 일반적인 행동입니다. 다르게 해석하면,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는 높게 판단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 기준을 둡니다. 흔히 집안 살림에 치거나 바깥일에 지친 부모들이 아이의 응석을 대충 받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관심을 두는 대상에 강하게 집중합니다. 자신의 모든 관심을 쏟는 거죠. 우리도 어린 시절 해가 넘어가는 것도 모른 체 골목길에서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아이는 자신과 대상을 하나로 일치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물건이 상하거나, 좋아하는 동물이 죽으면 그 감정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가치를 어떤 대상에 투영합니다. 하지만 어른은 가치를 설정하는 조건이 다양합니다. 어떤 일에는 이런 가치를 기준으로 삼지만 다른 대상에는 저런 기준을 가치의 척도로 삼습니다. 그래서, 같은 일이나 대상이라 할 지라도 상황이나 현실에 따라 다른 가치가 부여되곤 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대상의 기준을 설정할 때 어른이 아이보다 다양한 판단 조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지를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어린 왕자가 요구하는 양 한 마리의 그림이 화자가 필요로 하는 비행기 수리에 비해 반드시 낮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 한 마리의 그림보다 비행기 수리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고장 난 비행기가 그림에 비해서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죠.

 

이런 가치 기준은 양과 비행기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어른들은 어른들이 필요해서 하는 행위에는 많은 가치를 부여 하지지만 아이가 필요해서 원하는 요구에는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어른과 아이의 대화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어른과 아이의 대화에서는 대체로 아이의 의견이 쉽게 무시됩니다. 아이의 의견이 어른의 입장에서는 가치 없는 말로 들리기 쉽습니다. 표현 방법이나 대화의 기법이 서툰 아이들의 언어를 어른들은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아이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이를 이해하는 노력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어른에게는 너무 힘든 일입니다. 

 

어린 왕자는 화자가 그린 그림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습니다. 어린 시절 모자를 그렸던 화자가 어른들에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되새겨줍니다. 결국 화자는 어린 왕자장의 요구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린왕자는 어른들 가슴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를 건드립니다. 어린시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어른이 되어서 바꾸거나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죠. 결국 편리함에 젖은 채 불합리한 상황을 대물림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셈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 순수합니다. 어린 왕자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어른이 된 지금 한 번쯤 되돌아보라는 주문입니다.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상자 속에 들어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상자. 그 상자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생택쥐페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어.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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