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카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진 아파르트헤이트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 인종 차별제도)와의 투쟁을 기록한 세계적인 프리랜서 사진작가입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자로 일한 많은 시간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생한 폭력 투쟁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카터는 1991년부터 의 그레그 마리노치. <요하네스버그 스타>의 켄 오스터브로크. 프리랜서인 주앙 실바와 함께 팀을 이루어 아프리카 부족 간의 잔인한 충돌을 촬영했습니다.
1993년 2월 그는 <위클리 메일>에서 휴가를 얻어 동료 작가 실바와 함께 반란의 움직임을 취재하러 수단으로 향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수단'은 1956년 영국에서 독립할 무렵부터 극심한 내전에 휘말렸습니다. 수단은 끊임없는 지역, 종교적 갈등에 의해 식량 생산이 급격히 줄었고, 부족 간의 전투로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정부군과 게릴리 사이의 잦은 분쟁으로 말미암아 산하 기구들은 식량 공급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카터 일행은 수단의 참상을 촬영하기 위해 식량 배급소가 마련된 '아요로'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는 굶주린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러 비틀거리며 배급소로 들어오는 참혹한 장면을 취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배급소 외곽지역을 촬영하기 위해 덤블로 들어갔다가 한 장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사진에 담긴 장면은 어린 소녀가 힘없이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독수리 한 마리가 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현실을 표현한 이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 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퓰리처 상 수상의 영광도 잠시, 그는 한 달 뒤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에게서 소녀를 구하지 않았던 카터를 질책했기 때문입니다. 파장은 예상외로 컸습니다. 저널리즘의 근본 가치는 무엇인가? 죽음을 앞에 둔 어린 생명을 두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은 반 인륜적 행동이 아니었는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장의 사진보다 어린 생명을 먼저 구해야 했다는 의견에 동조합니다.
많은 논란은 비난이 되었고, 어린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카터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맙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 저널리즘과 인간 윤리 사이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 카터를 비난한 사람들은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비난했는가?
-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이런 현실에 마주 했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 그의 행동이 정의롭지 못했다면 그를 죽게 만든 많은 비난은 과연 정의로운 비난인가?
- 한 개인이 타인을 심판할 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나?
이 모든 질문의 해답을 찾지는 못하겠지만, 올바른 도덕관에 대한 생각을 통해 질문의 답을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매우 불 안정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추위나 비. 바람 등 자연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신체를 갖고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빠른 발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강한 힘을 갖고 태어나지도 못했죠. 자연 생태계에서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만 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운명은 그만큼 불안정한 자아를 가지도록 진화했습니다.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인간 욕구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것도 생존입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 의하면 인간 욕구 중 가장 하위 욕구인 생리의 욕구(1단계 욕구)가 해결되면 다음 단계인 안전과 보호의 욕구(2단계 욕구)를 원한다고 합니다. 이 5단계 욕구 중 1단계와 2,3단계 (3단계: 소속, 안정) 욕구는 모두 개인에 관련된 욕구입니다. 나를 제외한 타인이나 혹은 집단의 욕구가 아닌 오로지 <나>라는 개인만을 위한 욕구가 가장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이는 모두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일련의 장치입니다. 의. 식. 주로 통용되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요소를 해결하고 나면, 보다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한 두 번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이 단계를 거치면 마지막으로 더 안전한 나를 위한 소속과 심리적 안정을 외부로부터 찾는다고 합니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개인 욕구 실현이 강한데, 그 이유는 인간 자체가 불 안정한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엔 너무 나약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매우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다시 케빈 카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는 저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요?>, <죽음으로부터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저널리스트를 너무 쉽게 비난하지 않았나요?> 케빈 카터에게 씌워진 <부 도덕한 행동>과 <반 인륜적 행동>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우리는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가벼운 말 한마디에 쉽게 흥분하고, 쉽게 동의합니다. 진실을 생각하거나 폭넓은 안목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는 노력은 쉽게 무시됩니다. 감정과 감상에 사로잡힌 판단과 언행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불안정 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합니다. 자기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 상관없기에 대체로 쉽게 판단해 버리는 실수를 합니다. 바로 이런 행위가 케빈 카터의 비극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란 존재에만 집착하는 인간의 근본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행동에 스스로 질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분석하거나 살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너무 쉽게 감성에 의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중은 케빈 카터를 비난하기 전에 그가 왜 수단으로 갔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단지 저널리스트라는 그의 직업 때문 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수단은 너무 위험한 장소였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저널리스트가 모두 전쟁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비교적 안전한 선진국에서도 활동하거나 전쟁과 무관한 자연 생태 속에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단으로 간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의 열쇠는 과거 그의 행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비 인륜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문제를 오랫동안 카메라에 담은 그의 신념에 비쳐 볼 때 카터는 아프리카의 비극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명감으로 수단에 갔을 것입니다. 그가 수단에서 활동한 활동 역시 굶주림에 처한 사람들이 대상이었습니다. 정부 기구의 높은 사람들이나 중요한 사람이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죠. 이런 그가 반 인륜적 행동을 했다고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단 몇십 초. 그 몇십 초 사이에 그에게 단 일말의 고민도 없었을 까요? 그의 행동은 현재 아프리카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 저널리스트로의 의무와 신념에 따른 습관적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올바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고려해 봐야 합니다.
당시 카터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그의 다음 행동을 간과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는 아주 짧은 시간을 들여 사진을 찍고 난 후에 아이를 난민 보호소로 데려갔습니다. 물론 아이는 결국 죽었지만, 그는 저널리스트로의 의무와 인륜적인 행동 모두를 실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오지를 취재하는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지켜야 할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맨손으로 현지 주민과 쉽게 접촉하지 말 것>입니다. 오랜 전쟁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은 신체 면역 상태가 매우 취약합니다. 그래서, 현지인과 접촉할 경우 의도하지 않는 병원균을 퍼트릴 우려가 있었던 것이죠. 물론 아프리카 풍토병이 저널리스트에게 옮길 위험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안전하지 않은 접촉은 규정을 위반하는 행동입니다.
카터는 이런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아이를 구조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했습니다. 단지 어떤 행동이 먼저였냐를 두고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을 그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판단합니다. 특히 타인의 도덕적 문제는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로 평가합니다. 나의 도덕적 문제에는 항상 이런저런 사정이나 이유를 판단 근거로 삼지만, 타인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사회 규범>이나 <법질서>를 먼저 들이댑니다. 그리고, 제단 되고 편집되어 보이는 타인의 도덕성에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사람은 마치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처럼 변합니다. 올바른 근거나 사실 관계는 관심 밖으로 밀려납니다. 단지 사소한 소문 하나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해 버립니다.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적 감성만 존재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죠
인간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사고하고 발전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적 발전이 아닌 개인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한 발전을 해야만 하는 것이죠. 이런 태도는 전체 사회를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는 매우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엄중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댑니다.
케빈 카터가 수단에서 겪은 일화는 여러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난민 보호구역을 혼자서 벗어난 관계로 그가 소녀와 마주한 상황을 우리가 상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많이 알려진 이야기로는 <어린아이 옆으로 독수리가 날아왔고 케빈 카터는 사진을 찍은 후 독수리를 쫓아 버렸다. 그리고 아이를 구해서 난민 수용소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와 동행 취재를 했던 작가 조아오 실버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살짝 땅바닥에 내려놓았을 뿐이었어. 아이 사진을 찍고 나니까 뒤쪽으로 독수리가 휙 하고 날아와서 앉았대. 녀석의 바로 눈앞에 말이지. 그래서 독수리가 달아나지 않도록 살그머니 몸을 움직여서 양쪽 핀트가 제대로 맞는 장소로 10미터가량 옮겨 찍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몇 장 찍는데 독수리가 휙 하고 날아가 버렸다. 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 발췌 -후지와라 아키로 저)
케빈 카터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쪽지 한 장을 남겨두었습니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총을 든 미치광이. 굶주린 아이. 시체. 고통의 기억에 사로잡힌 남자에 대해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취재 중에 목숨을 잃은 친구 켄.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