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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문경민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

l죠리퐁l

22.04.23 01:16:48수정 22.04.23 01:17:58추천 2조회 3,251

살려 주세요.

 

첫 문장은 아니지만 첫 문장과 다름없다.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상담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 훌훌은 선생님의 컴퓨터 배경화면에 깔린 코믹 재난 영화 포스터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시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코믹 재난 영화 주인공의 살려 달라는 외침은 관객에게는 재미있는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주인공 얼굴은 그저 희화화된 캐릭터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주인공은 그 포스터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저자 문경민 씨는 소설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이 운명처럼 맞닥뜨리게 된 고통에 대한 부분, 그리고 사회적인 평등이 전제되어야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권리를 마땅히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누군가의 고통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은 무엇인가?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떻길래 저자는 그것을 꾹꾹 눌러 담아 한 편의 소설로 만들었을까? 이제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로 하자.

 

주인공 유리는 왼쪽 이마에 작은 흉터를 소유한 고등학교 2학년 여자 아이다. 하얀 선이 3센티가량 비스듬히 내려온 흉터지만 언제 어떻게 생긴 흉터인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 긴장되는 순간이면 그 흉터로 손이 가곤 한다.(5p) 어쩌면 세성 사람들 모두 하나쯤은 갖고 있을 법한 흉터에 주인공은 유난히 집착한다. 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흉터라서 집착하는 것일까?  어쩌면 소녀의 흉터는 우리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은 스스로 깨달을 사이도 없이 누군가에 작은 흉터를 만들곤 한다. 소녀의 흉터는 치유되지 못하고 남아서 긴장을 자양분 삼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녀의 생활은 불편함과 고통이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없는 일들이 그녀에게는 숨이 탁 막혀올 정도의 암담함으로 다가온다. 흔한 자기소개서 한 장을 두고 그녀는 써야 할 이야기와 숨겨야 할 이야기를 고민한다. 학년이 올라가면 으레 실시하는 선생님과의 면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와 둘이 산다고?"

적을까 말까 고민하다 적은 문장이다. 알리고 싶지 않은 복잡한 가정 사정의 일부였다." (8p)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삶이 그녀에게는 현실이 되고, 그녀의 현실은 누군가에게는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입을 다문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조차 그녀의 가정사는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죽음. 아니 엄마 서정희 씨의 죽음. 주인공은 엄마를 철저히 객관화시킨다. 그래야만 그녀의 죽음에 감정을 소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입양했던 사람이었고 나를 버린 사람(13p) 서정희 씨의 죽음과 동생 연우의 등장. 그리고, 주인공의 삶은 다시 특별한 경험으로 이어지게 된다. 연우라는 동생에 대해서 주인공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 서정희씨가 남기고 간 아이였다....... 연우와 나의 공통점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둘 다 이름앞에 '서'라는 성씨를 두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둘 다 아빠를 모른다는 것. (15p)

 

주인공의 삶은 늘 이랬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순간들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 그리고 남겨지는 상처들의 연속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혼자 잠든 내 방에 불쑥 들어와 온몸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떠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괜한 소외감과 괜한 억울함, 괜한 서러움이 마음속 각기 다른 그릇에 담가 찰랑거렸다. 찰랑거리던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넘쳐 주르륵 흘러내리는 날이면 나는 잠깐 돌아 버렸다. 칼로 필통을 긋고 지우개와 연필을 썰고 혼자 조용히 훌쩍이곤 했다.(19p)

 

주인공의 유일한 탈출구는 친구다. 오랜 시간 같은 감정을 나누고 같은 이야기를 재잘거리는 친구는 주인공을 그나마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가끔 친구들의 당연한 일상이 주인공의 특별한 현실과 마주칠 때면 마치 서로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괴리감이 생긴다. 서로의 사정을 알고 지내기에는 주인공의 삶이 너무 복잡하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적당한 거리감과 어쩔 수 없는 침묵에 빠져야만 했다.

 

미희와 주봉이도 너절한 내 가정 사정은 몰랐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구나. 하고 짐작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입양 사실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2년 뒤면 없던 일이 될 터였다. 까만 상자에 담아 낭떠러지 아래로 내던져 버릴 사연이었다. (32p)

 

저자는 소설 곳곳에 소외받는 이웃의 삶을 조명해준다. 이유나 사연은 제각기 달라도 당연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소수의 이야기를 담담한 필체로 전달한다. 절대 다수속에서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수의 삶과 생각과 행동은 왠지 낯설다. 그래서, 그 낯선 이야기에 불편해하고 낯선 이야기를 외면하면서 그들의 삶은 커다란 장벽 속에 갇혀버리게 된다. 이런 까닭에 낯선 이들의 삶은 바깥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침묵을 강요받는다. 세상에 그 사연이 알려지면, 그것은 놀림이 되어 돌아오고 그것은 난도질당한다. 그리고 그들은 반복되는 해명에 지쳐간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의 삶은 항상 그렇다. 이유 없이 해명해야 하는 삶. 난데없이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삶. 그래서 그들은 더 높은 장막 뒤로 숨어버리려 하는지도 모른다. 따듯한 햇볕과 시원한 공기는 다수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온전히 누릴 자유를 박탈당한다. 이런 부조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을 작가는 세윤을 통해서, 동생 연우를 통해서 고발하고 있다.

 

세윤은 접시를 던지지 않았다고 했다. 식탁에서 말다툼하다가 접시를 잘못 건드려서 떨어진 거라고 했다. 자기는 엄마에게 접시를 던지는 그런 아들은 아니라고, 그렇게 오해했다면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187p)

 

"죽었잖아요. 떨어져서 죽었잖아요. 그게 안 불씽해요? 그걸 왜 쓰레기통에 버리는데요? 왜요?" (128p)

 

우리는 결핍이 존재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거나 올바른 진실을 찾는 수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 눈에 비친 결과만 본다. 그 결과도 결핍이나 고통과 결부시켜 마음대로 제단 하고, 쉽게 결론을 내린다. 한 부모 아이, 혹은 입양된 아이. 피부 색깔이 다른 아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한 아이를 우리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은 우리의 감정에 따라 쉽게 소비되고, 찢겨 버려진다. 소수의 고통을 우리는 너무 몰염치한 태도로 마주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숨으려 들고, 동생은 어긋나려 하고, 세윤은 그런 현실에 그냥 그런대로 맞추어 살아가려고 한다. 

 

작가는 책을 통해서 간단하면서도 잊고 있었던 해결책을 하나 던져준다. 배려. 동정받지 않는 배려. 왜 그럴까?라는 호기심을 채워주는 배려라기보다 그냥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배려야 말로 가장 따듯한 위로라고 말한다. 그래서, 공원에서 연우를 찾아다닐 때 고향숙 선생님의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우의 잘 못을 사과하기 위해서 온 식구가 다 나설 때 세윤이네 가족의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느닷없이 찾아온 연우에게 질문을 퍼 붓기보다 따듯한 밥 한 그릇 챙겨준 주인공을 향해 연우는 굳게 닫고 있던 마음을 서서히 연다. 

 

인간은 항상 누군가로부터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가 만든 상품을 소비한다. 때론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며 살고 있다. 그 누군가가 가족이라 할 지라도 개인은 끊임없이 타자와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개인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누군가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간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영화를 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은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저자는 소설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상처와 고통을 안은 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 상처와 고통을 보듬어주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전해지는 관심과 위로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소설 마지막은 엄마 서정희 씨에 대한 유리의 이야기로 끝맺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248p)

"얼마나 외로웠을까." (249p)

 

소설 훌훌은 입양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소재의 소설이다. 어쩌면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 유리나 세윤이가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소설의 내용처럼 그것은 금지된 단어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2016년 기준 통계청 자료 분석에 따르면 미혼부모는 약 3만 3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매년 베이비 박스에 버려지는 아기가 연간 3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300여 명의 아이들이 입양된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가 발전했지만 여전히 버려지는 아이들은 많고, 입양되는 숫자도 여전히 300명을 웃돌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는 자신도 중증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입양 가족 아버지가 했던 <나는 살아오는 내내 깨어질 위험이 늘 있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그리고 저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 내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통해서, 자기 상처도 치유할 수 있고 현재의 어려운 것들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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