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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취미로 알씨카를 했던 이유?

알사탕한개

22.09.06 21:04:05추천 42조회 13,323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알씨카 영상도 함께 올리면 좋았을텐데 오늘은 제가 알씨카를 취미로 하게된 이유와 개인사를 좀 적어보고자 하고 또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고자 함입니다.

 

저는 시골이 태생이다보니 어렸을 적 티비로 가끔씩 나오는 무선조종 알씨가 신기했죠. 그리고 나이가 들고 첫째를 낳고 무작정 와이프한테 나 알씨카 한대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정을 들은 와이프는 당시 힘든 생활 속에서도 허락을 해줬고 한대 구입을 했죠. 하지만 생각보다 알씨라는게 비싼지라 아주 가끔 굴릴뿐 결국 아끼다가 똥이되듯이 그냥 진열하고 보는데 만족했었습니다.

 

회사 형도 잘만나서 열심히 정신차리고 회사다니고 조금씩 형편도 나아지고 그리고 둘째를 뜻하지 않게 갖게되었습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 담도폐쇄라는 많이 아팠습니다. 아마 2년 전 쯤에 제가 글을 올린적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줄곧 병원 생활을 하던 둘째는 태어나서 2달만에 담도 폐쇄 수술에 들어갔으나 이미 간 기능이 망가져 1차 수술실패. 결국 간 이식을 받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 상태는 심각해지고 간 기증자는 나타나지 않아 부랴부랴 집사람의 간으로 간이식 수술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족은 둘째가 잘 낫고 건강을 되찾고 행복해질 날만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5개월 뒤 아이 배가 다시 커지는 것 같아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두번째 희귀병 혈액암 중에서도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희귀 혈액암이라는 이야기에 모든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살수있는 확률 조차 데이터가 없으니 말을 할 수 없다는 의사선생님 말에 정말 세상 모든게 원망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리고 이시기 심각하게 우울증이 왔었고 그때 와이프는 병원에서 둘째를 돌보기에 저보고 시간 날때 오빠 좋아하는 알씨카라도 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라 했고 그렇게 시작한게 알씨카라는 취미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게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도 알씨카를 보여주고 영상도 보여주면 신기해하고 좋아하는건지 재미있게 보더라구요.

그러니까 저도 둘째의 웃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 틈이 나는데로 알씨카 영상도 찍고 취미도하고 둘째 보여주고 그러면서 제 마음또한 어느정도 다스려지는 듯하여 좋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세상 모든게 밉고 원망스럽고 슬픈 순간이 6개월 전 쯤에 우리가족에게 찾아왔습니다.

둘째는 올해 3월 초 새벽에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최근 얼마전까지 말더듬이 시작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심리불안 증세를 보였고 하루에도 수십번 자살충동이 있을 만큼 심각했습니다.

하는 일이 출장이 잦고 사람을 만나는 일인지라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는 심리상태였습니다.

차를 끌고 가는 길에 여러차례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릴까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난 아빠고 와이프,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첫째가 있기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가족을 위해 돈을 벌자. 그리고 가족을 행복하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극복해보고자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선생님께서는 휴식이 필요하다하였고 회사대표형도 좀 쉬는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제 자신을 몰랐는데 집사람과 회사형, 회사사람들에게 제 자신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먼저 집사람을 얼마전 울면서 제가 무섭다고 했습니다. 첫째와 잠드는게 무섭다고 오빠가 어떻게 할것 같다고.

 

두번째는 회사형입니다. 언제부턴가 제가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고 대화를 해도 다 팅겨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회사 직원들이였습니다.

제가 무섭다고 했습니다. 언제 부턴가 혼잣말을 하고 안하던 욕을 한다는 것이였고 혼자 흥분했다가 웃다가 한다는 것이였는데 

 

위 모든게 저 스스로는 느끼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회사 형한테도 집사람한테도 치료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들을 하니 좋지 않다고 하셨고 약처방과 꾸준히 심리상담을 약속했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가 잘못되었다는 주변이야기를 국기울여듯고 스스로 고치려한다는 점은 좋은 방향이라고 하셨고 이런 큰 아픔을 겪고도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것은 가장이고 남편인 나의 몫이기에 무조건 나는 버텨야한다는 생각에 모든걸 가슴에 억누른 것들이 안좋게 표출된 것이라 합니다. 심각하면 극단적일 수도 있다는 말 같았습니다.

 

지금 가장 나를 억누르는 것이 무엇같냐고 하시길래 한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둘째가 너무나 희귀한 혈액암이라는 얘기에 그래도 희망을 버리면 안되는 것이 부모의 도리로 알기에 여기저기 알아보게되었고 그러던중 한 모대학병원에서 비슷한 혈액암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직접 담당의사에게 듣게 되었습니다.

 

다만 잘될거라는 보장이 없다라는 말에 저는 아이가 잘못되면 제가 모든걸 책임질테니 전원을 받아달라하였고 집사람과 장모님 모든 사람들한테도 제가 다 책임질테니 옮겨서 치료하자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 둘째는 하늘의 별이되었고 저는 만약 이전 병원에 맞겨서 더 지켜봤더라면… 울 둘째는 아직도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내가 그 선택을 안했더라면 울아이는 지금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모든게 다 내책임같고 나때문인거 같고 나때문에 울아이가 하늘의 별이 된게 나 나때문인거 같아서 괴롭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세상에서 아프지 않게 행복하게 잘있을거라고 믿으먼서요.

그리고 조금씩조금씩 이상황을 헤쳐나가려고 합니다.

 

사실 제가 다시 치료받고 지금처럼은 더이상 안되겠다고 느낀 시점은 첫번째 집사람의 말이 컸습니다.

제가 셋째를 갖자고 했고 집사람은 셋째 갖는게 또다시 잘못될까 두렵다했고 그리고 지금의 제 상태로는 더더욱 안된다고 했기에 제가 나 자신을 추스렸을 때 그때 노력해보자 했기에 다시금 본래의 나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힘들때 날 많이 위로 해주던 알씨도 조만간 다시해보려고 합니다.

그냥 답답한 제 이야기, 두서 없는 이야기지만 들어주신 모든 형님, 동생님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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