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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류] 국화와 칼

로오데

22.09.13 15:24:45수정 22.09.13 17:10:26추천 7조회 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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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가면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 처음 [국화와 칼]을 읽으면 일본이 우리와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두 번 읽었을 때에는 비로소 일본과 우리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전쟁 중에 드러난 일본인의 특징은 더 센 상대를 만나도 끝까지 싸우려고 하고 포로로 잡히면 자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에게도 드러나는 특징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서양식이다. 중국인은 전쟁 중에 후퇴를 하다가도 지치면 앉아서 쉰다. 그러다가 적에게 발견되면 “지쳐서 쉬고 있는 중이니까 죽이지 말라”라고 말한다. 또한 전쟁 중에 드러나는 서양인들의 공통점은 기독교사상이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보면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신부나 수녀는 공격하지 않는다. 

 그런 서양인들이 일본과 전쟁을 해 봤더니 일본인들은 그런 곳을 심하게 공격했다. 비 유럽인 일본과 전쟁하면서 일본인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화와 칼]의 집필 배경이 되었다.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케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서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는 ‘의리(義理)’를 쉽게 이해하지만 서양인들은 의義忠 같은 것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상하 질서, 종횡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서양인의 평등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서양사람들에게는 형제라는 개념이 없고 우리 역시 서양의 평등 개념이 없다. 

 서양인들에게는 로열티loyalty 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의 충忠이란 개념과는 다르다. 서양인들의 인간관계는 완전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이다. 동양인들은 은혜 사상을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는 것으로 쉽게 이해하지만 서양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동양이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말은 ‘자신이 낳은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고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서 아이를 열심히 기르는 것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의 차이다. 

 

 

 

제 2장 

전쟁 중의 일본인

 

 

 

 일본이 이번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용한 전제부터가 미국과는 정반대였다. 일본은 국제 정세를 다른 방법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추축국의 침략행위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했다.

 반면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인 일본은 계층제도를 바탕으로 뒤쳐진 동생인 중국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동아 여러 나라와 동일한 인종이므로 이 지역에서 먼저 미국을, 다음엔 영국과 소련을 쫓아내 ‘저마다의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적 계층 조직 속에 제각기 알맞은 위치를 주고 하나의 세계로 통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만들어 내기에 알맞은 하나의 환상이었다. 일본에게 불행한 일은 일본 점령 하에 있었던 나라들이 대동아의 이상을 일본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을 점령한 것은 ‘알맞은 위치’(일본은 점령하여 계층의 상위)에 서 있어 그들은 굴복 할것이라 생각 했지만, 저항하는 한국을 자신들의 문화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본은 이기고 있을 때에도 일본의 정치가, 대본영 군인들은 이 전쟁은 군비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인의 물질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 신앙의 싸움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일반인의 생활에서도 물질적 환경보다 정신이 우월하다는 관념을 주입했다. 예를 들어 국민이 24시간의 공장 노동과 야간 폭격으로 극도로 지쳐 있으면, 그들은 “우리의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우리의 의지와 정신은 더욱 드높아져 육체를 능가한다”, “우리가 녹초가 되면 될수록 더욱 좋은 훈련이 된다”라고 말한다. 국민이 겨울에 온기도 없는 방공호 속에서 떨고 있으면, 라디오에서는 대일본체육회가 방한 체조를 하라고 명령했다. 이 체조는 난방 시설이나 이불 대용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훌륭하게도 이미 국민의 체력을 정상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된 식량을 대신하기도 했다. "지금과 같이 식량이 부족한 때 체조가 다 뭐냐고 말할 사람도 물론 있으리라.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식량이 부족할수록 우리는 체력을 다른 방법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즉, 체력을 더욱 소비함으로써 그것을 증대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미국인이 체력을 보는 관점은, 그 전날 8시간 잤는가 5시간 잤는가, 평상시와 같이 식사를 했는가 하지 못했는가, 추웠는가 춥지 않았는가, 즉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했는가에 있다. 그러나 일봉인은 정반대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것은 물질주의적인 방법이라고 일본인은 생각한다.

 

 일본인이 전쟁 중 끊임없이 되풀이한 또 하나의 주제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매우 잘 나타내 준다. 그들은 계속 “세계의 눈이 우리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다” 문구를 입에 올렸다. 따라서 일본인은 일본 정신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미군이 과다카날섬에 상륙할 무렵 일본인이 부대에 하달한 명령은, “지금 우리에게 ‘세계’의 눈이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일본 해군 장병들은 어뢰 공격을 당해 배에서 탈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될수록 의연한 태도로 구명정을 옮겨 타라는 훈계를 받아 왔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미국인이 그대들의 추태를 영화로 찍어 뉴욕에서 상영한다.”라는 것이다. 세계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 그들에겐 중대한 문제였다. 이런 점은 일본 문화 속에 깊이 새겨진 관념의 하나였다.

 

 일본인의 태도에 관한 문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천황에 대한태다. 천황은 신하에게 대체 어느 정도의 지배력을 가질까? 봉건시대 700여 년을 통해 천왕은 명목상 국가 원수에 불과 했다. 충절의 대상은 그의 영주 다이묘였고, 그 위로는 군사상의 대원수인 쇼군이 있었다. 이처럼 일본의 일반 민중에게 천황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황이야말로 일본의 근대 국가적인 신토神道의 심장이라고 일부 미국인 학자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일본을 알고 전선이나 일본 측에서 나온 보도를 접한 많은 현명한 미국인은 이와 반대의 의견을 접하게 된다.

 끝까지 완강히 저항한 일본군 포로들은 극단적인 군국주의 원천을 천황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천황의 뜻을 받들어 모시고’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하고‘, ’천황의 명령에 목숨을 바치고 있었다. ’천황이 국민을 전쟁으로 이끄셨다. 따라서 그것에 따르는 것이 나의 의무다.“ 포로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 반대 했거나 앞으로의 일본의 정복 계획을 부정했던 사람들 역시 평화주의적신념의 출처가 천황이라고 말했다. 천황이 모든 사람에게 전부였다. 전쟁에 휩싸여 피로한 자들은 천황을 ‘평화를 애호하시는 폐하’라고 했고, ”폐하는 항상 자유주의자셨고, 전쟁에 반대하셨다“고 주장했다. ”페하는 도조에게 속으셨다.“”만주사면 중 폐하는 군부에 반대 의향을 표명하셨다.“ ”전쟁은 천황이 모르는 사이에. 또 천황의 허가도 없이 시작되었다. 천황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따라서 국민이 전쟁에 휩쓸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천황은 병사들이 얼마나 심한 학대를 받고 있는가를 모르신다.“ 이런 진술은 독일군 포로들과는 전혀 달랐다. 독일군 포로들은 휘하의 장군이나 최고 사령부가 히틀러를 배신한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전쟁 준비의 책임은 최고 선동자인 히틀러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군 포로들은 황실 숭배는 군국주의 침략 전쟁 정책과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들에게 천황은 일본과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다. “천황이 없는 일본은 진정한 일본이 아니다.” “천황이 없는 일본은 생각할 수 없다.”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이며, 국민 종교생활의 중심이다. 천황은 초종교적 대상이다.”설령 일본이 전쟁에 패했다 하더라도 패전의 책임은 천황에게 있지 않다. “국민은 천황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패전하더라도 책임은 내각과 군 지휘관이 져야 하며, 천황에게는 책임이 없다.” “설령 일본이 지더라도 일본인은 열 명이면 열 명 다 천황을 계속 숭배할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천황에 대해 비판을 초월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회의적인 조사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인식하는 미국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제 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아야 한다. 질서와 계층제도를 신뢰하는 일본인과, 자유와 평등을 신뢰하는 미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계층제도를 하나의 가능한 사회기구로서 바르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는 인간 상호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서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가족, 국가, 종교, 경제생활등 국민적 제도를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 가 있다.

 일본인은 국내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제관계도 계층제도의 관점에서 보아 왔다. 최근 10년 동안 일본인은 일본이 국제적 계층제도의 피라미드에서 차츰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미 서양 여러 나라가 정점을 차지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의 상태를 감수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의 밑바탕에는 역사 계층제도에 대한 견해가 깔려 있다. 일본의 외교 문서는 그들이 얼마나 계층제도를 중시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1940년에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체결한 3국 동맹의 전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대일본제국 정부, 독일 정부, 이탈리아 정부는 세계만방이 각자 알맞은 위치를 갖는 것이 항구적 평화의 선결 요건임을 인정하므로.......” 

 

 오늘날의 정치 평론에서도, 대동아 정책 논의 속에는 전통적인 형의 특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1942년 봄, 한 중령은 육군성의 대변자로서 공영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다. 이 사실을 점령 지역의 주민에게철저히 인지시켜야 한다. 주민을 지나치게 배려하면, 그들이 일본의 친절에 편승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바꾸어 말하면, 형은 아우를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그것을 강요할 때 ‘지나치게 배려’해서는 안 된다.

 

 일본인은 누구나 우선 가정 내부에서 계층제도의 관습을 배우고 그것을 경제생활이나 정치생활 등 넓은 영역에 적용한다. 그가 실제로 집단 안에서 지배력을 가진 인물이든 아니든, 자기보다 높은 ‘분수에 맞는 위치’를 가진 자에 대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경의를 표하도록 배운다. 아내에게 지배당하는 남편, 동생에게 지배당하는 형일지라도 표면적으로는 존경을 받는다. 특권과 특권사이의 형식적인 경계선은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데서 조종하고 있다 하더라도 파괴되지는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실제 지배관계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권관계는 변경되거나 수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침범할 수 없다. 형식적 신분의 구속을 받지 않고 실권을 행사하는 쪽이 오히려 유리하다. 공격당할 위험성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다른 어떤 주권국보다도 그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지도처럼 정밀하게 규정되어 있다. 개인은 각각 정해진 사회적 지위 속에서 생활하도록 제약되었다. 그런 세계 속에서 법과 질서가 무력으로 유지도니 200년간, 일본인은 이 면밀히 기획된 계층제도가 안전을 보증하는 개념이라고 훈련받았다. 그들은 이미 아는 영역에 머무는 한, 이미 아는 의무를 이행하는 한, 그들의 세계를 신뢰할 수가 있었다. 도적들은 소탕되었고, 다이묘 간의 내전도 방지되었다.

 일본에서는 각각의 카스트가 절대로 동일한 카스트 안에서만 혼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카스트와 통혼을 가능하게 하는 공인된 절차가 있었다. 그 결과 마침내 부유한 상인이 하층 사무라이 계급에 합류했다. 이 사실은 서양과 일본의 현저한 차이점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서양에서 봉건제도가 붕괴한 것은 점점 발달하고 우세해진 중산계급의 압력이 그 원인이었다. 중산계급이 근대 산업 시대를 지배한 것이다. 일본에는 그런 강대한 중산계급은 발생하지 않았다. 상인이나 돈놀이꾼은 공인된 방법으로 상류계급의 신분을 샀다. 상인과 하층 사무라이는 동맹자가 되었다. 서양과 일본 모두에서 봉건제도가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에, 일본이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보다도 더 많은 계급 간의 이동을 승인한 것은 기묘하고도 의외의 일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무엇보다도 유력한 증거는 귀족과 서민 사이에 계급투쟁이 행해진 흔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두 계급이 제휴한 것은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는 편이 두 계급 모두에게 이로웠기 때문이었다. 프랑스혁명 같은 것은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제 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중국어에도 일본어에도 엉어의 ‘오블리케이션obligation(의무)’를 의미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일본이 말하는 온(恩)은,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윗사람이 아니거나, 적어도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은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게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라는 의미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를 배푼 사람을 온진(恩人)이라고 부른다.

 

 극진히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은 어머니에게 받은 온을 잊어 버리지 않은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갓난아이 적에 그에게 해 준 모든 일, 소년시절의 갖은 희생, 성인이 되었을 때 그를 도운 모든 일, 단지 어머니가 존재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어머니에게 지고 있는 모든 빚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이런 채무를 되돌려 준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랑을 뜻하기도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이다. 그런데 미국인은 사랑이란 의무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최우선이자 최대의 채무지인 ‘천황의 온’을 일컫는 경우, 온은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채무로서, 사람들은 황은을 무한한 감사로 받아들인다. 일본인은 이 땅에서 태어나 안락한 생활을 누리며 자기 신변의 크고 작은 일이 잘되어 간다고 느낄 때, 언제나 그것을 한 사람이 내려준 은혜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모든 역사 시대에 일본인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하는 세계의 최고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방 영주, 봉건 영주, 쇼군 등으로 변했다. 오늘날엔 그것이 천황이다. 그러나 윗사람이 누구인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채무의 윤리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큰 불쾌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고, 또 자신이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일본에서 계층제도가 얼마나 철저하게 조직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계층제도의 부수적 관십이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은 그 도덕적 채무를 서양인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존중할 수 있다. 

 

 일본 문화의 특수성이 온의 부담을 가볍고 지기 쉬운 것으로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서는 감정을 상하지 않고 온을 ‘입는 것’은 행복한 경우이다.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사람에게 온을 베푼다” 말을 한다. 그것에 가까운 영어 표현은 “타인에게 무엇을 강제한다 imposing upon another”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임포징 imposing’이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인 데 반해, 일본에서는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 또는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에게 뜻밖의 은혜를 입는 것을 일본인은 가장 불쾌하게 생각한다. 일본인은 이웃 사람이나 예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서는, 온을 받는 번거로움을 알면서도 기쁘게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대가 단순히 아는 사람이거나, 자신과 대등한 사람인 경우에는 온을 받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가능한 한 온의 결과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일본의 거리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이 제멋대로 참견하면, 그 사람에게 온을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메이지 이전의 유명한 법령 중에는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 불피룡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우 분명한 권한도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무언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받는다.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자신에게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도움을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제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사람에게 단지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워도 일본인은 마음이 편치 않다.

 

 일본어에는 ‘감사하다’는 의미를 가지면서도, 온을 받아 마음이 편치 않음을 표현하는 화법이 많이 있다. 그중 일반적으로 대도시 백화점에서 사용하는 아리가토 ありがとう’는,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Oh, this is difficult things)”를 의미한다. 일본인은 보통 이 ‘쉽지 않은 일’이, 손님이 물건을 삼으로써 그 상점에 주는 크고도 대단한 은혜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일종의 인사말이다. 이 말은 선물을 받았을 때 쓰이기도 하고, 그 밖의 수많은 경우에 쓰인다.

 보편적으로 ‘감사하다’는 의미를 가진 그 밖의 몇 가지 단어 역시 기노도쿠처럼 은혜를 받아 곤란하다는 심정을 표현한다. 상점 주인은 데체로 스미마센 すみません’이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것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이 된다. 즉, “나는 당신에게 온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경제조직 아래에서 나는 당신에게 입은 온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입장에 놓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의미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 일본인이 감사의 뜻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는 말은 ‘가타지케나이かたじけない’ 다. 이 말은 ‘모욕’, ‘면목 없음’을 의마하는 한자로는 辱(욕되게 할 욕)으로 표현한다. 이 말은 ‘나는 모욕을 당했다’와 ‘나는 감사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어 사전에는, 당신은 당신이 받은 각별한 은혜에 의해 욕을 당하고 모욕을 받았다 – 당신은 그런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 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풀이되어 있다. 이런 표현으로 당신은 온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부끄러움을 입으로 솔직히 고백한다.

 

 그런데 바로 이 치욕을 의미하는 하지(恥) 일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상반된 감정을 품으면서 온을 입는다. 일반적으로 인정된 관계 구조에서, 온이 내포하는 커다란 채무는 때로는 사람들을 자극시켜 전력을 다해 은혜를 갚게 만든다. 그러나 채무자가 되는 것은 대단히 괴로운 일이어서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은혜를 입는 사람이 얼마나 화를 내기 쉬운가는,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유명한 소설 [봇짱] 속에 선명히 모사되어 있다. 주인공 봇짱은 시골의 작은 읍에 학교 교사로 처음 취직한 도쿄 출신의 젊은이다. 봇짱은 곧 동료 교사 대부분이 속물이어서 이들과 같이 지내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봇짱은 한 젊은 교사와 친해진다. 언젠가 둘이서 거리를 거닐 때, 봇짱이 고슴도치라고 별명을 붙인 그 교사가 봇짱에게 빙수를 한 그릇을 사 준다. 고슴도치는 빙수값으로 1전 5리 –1센트 5분의 1정도- 를 지불한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다른 교사가, 고슴도치가 봇짱을 좋지 않게 말했다고 고자질한다. 봇짱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고슴도치에게 받은 온이 마음속에 걸린다.

 

 

그런 놈에게, 빙수 같은 하찮은 것이라도 온을 입었다는 건 내 체면이 깎는 일이다. 1전이든 5리이든 내가 이런 온을 입는다면, 마음 편히 죽을 순 없다.......(중략)......내가 거절하지 않고 그의 온을 받은 것은, 그를 온전한 인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내 빙수값을 내가 지불하겠다고 우기지 않고, 나는 온을 받고 감사해야 했다. 그것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답례다. 지위도 없고 관직도 없지만, 나도 한사람의 독립된 인간이다. 독립된 인간이 온을 호의로 받아들이는건, 100만 원보다도 더한 보답이다. 나는 고습도치에게 1전 5리를 쓰게 하고는, 100만 원보다 더 값진 답례를 치른 셈이다.

 

 

 다음날 그는 고슴도치의 책상 위에 1전 5리를 내던진다. 그것은 빙수 한 그릇의 온을 갚은 뒤라야만 두 사람 사이의 당면 문제, 즉 고슴도치가 봇짱을 모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먹다짐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제 친구 사이가 아닌 이상 우선은 그 온을 없애 버려야 한다.

 이처럼 사소한 일에 관한 신경과민이나 쉽게 상처받는 현상은, 미국에서는 젊은 폭력배들의 기록이나 신경쇠약증 환자의 병력 기록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것은 미덕이다. 일본인은 이처럼 극단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심각한 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비평가들은 봇짱을 ‘신경질적이고 수정처럼 순수하고 옳은 일을 위해서는 끝까지 싸우는 인간’이라고 평한다. 저자 또한 봇짱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사실상 비평가들은 항상 주인공을 작자 자신의 초상화라고 인식한다. 이 소설은 높은 덕에 관한 이야기다. 온을 입은 사람이 자신의 감사는 ‘100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알맞은 행위를 함으로써 비로소 채무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오직 ‘온전한 인간’에게서만 온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인 사이에서 누가 누구에게 온을 입혔다고 말할 때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적어도 봇짱이 보잘것없는 빙수 한 그릇의 채무를 그처럼 과대시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은 빙수 가게에서 신세를 진다든지, 어머니를 잃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오랫동안의 헌신이라든지, ‘하치’처럼 충실한 개의 헌신 등을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 척도로 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일본인은 그렇게 산다.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받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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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실격]이란 작품을 공감가지 못하겠다, 이전 글에서도 여러번 말씀 드린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비슷한 소설로 [죄와 벌]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다섯손가락 안에 들정도로 재미 있으며, 주인공의 고뇌에 공감하면서 푹빠져 들었던 작품입니다. 둘다 편집증 적으로 자아를 찾습니다. 두작품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인간 실격]의 주인공은 소인(小人) - 작은것에 집착하고, 소탐대실, 잘 삐짐 - 이였습니다. [국화와 칼]에서도 일본인은 작은것에 삐쳐서 평생 그걸 품에 안고 산다고 합니다. 할복 문화도 거기에서 나온 하나의 무책임한 현실 도피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일본 문학을 읽다 보면 뭔가 가슴이 답답하던 점을 이 책을 읽고 나서 명확해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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