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새치기 당했다. 난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매일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내가 이 과선교에 오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른 아침 이 시간에 부드러운 여명 속에서 기능미 넘치는 기관차에 이끌려 힘찬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화물 열차의 자태를 사진에 담고 싶어서 여기에 오는 것이다.
이 시간대는 겨울부터 봄까지는 아직 어두워서 좋은 배경을 찍을 수 없다. 초여름 이맘때가 제일 좋다. 그리고 이 과선교는 이 시각에 지나가는 화물 열차를 촬영하기 가장 좋은 명당이었다.
그런데 최근 난간 너머에 사람 키만 한 패널이 덕지덕지 설치되어서 완전히 시야를 가리고 말았다. 안전 대책이 이유겠지만 내겐 그저 훼방이었다. 덕분에 절호의 촬영 지점 하나가 망해 버렸다.
다만 다행히도 예산 절약 때문인지 공사를 대충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폭으로 한 곳만 패널 사이에 틈이 있었다. 지금은 이 틈새가 유일하게 촬영이 되는 귀중한 장소였다.
겨우 아름다운 새벽녘 빛깔이 배경으로 들어오는 계절이 되었기에 사흘 정도 전에 두근거리면서 카메라를 들고 여기를 찾았지만 공교롭게도 선객이 있었다. 백발이 섞인 야윈 중년 남성이 그 틈새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것이다. 제기랄! 이 자식 빨리 비켜주지 않으려나. 옆에서 짜증을 내면서 기다렸지만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없다. 그러는 사이에 화물 열차가 지나가 버렸기에 그 날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그 다음날 또 똑같은 시각에 카메라를 들고 여기에 왔지만 또 그곳에 선객이 있었다. 전날 보았던 남자였다. 가볍게 헛기침을 했지만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히 망부석이었다. 그리고 또 열차가 지나가 버렸다. 이걸로 이틀에 걸쳐 촬영을 방해 받았다. 오늘 아침도 모처럼 일찍 일어났는데. 나는 혀를 차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어제는 날씨가 안 좋았기에 하루 쉬고 오늘.
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이제 그만 좀 하지. 애초에 늘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멍하니 선로 쪽을 보고 있을 뿐이다. 가끔씩은 내게 장소를 양보해 줘도 되잖아.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말을 걸어보았다.
"저기, 죄송합니다."
남자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야위고 조금 주름이 생긴 이마. 이목구비가 전부 작아서 왠지 허약해 보인다. 실제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최근 이 시각이 되면 늘 거기에 서 있으시던데 뭘 하고 계신가요?"
"아, 네..."
따지듯이 내가 물어보니 남자는 그렇게 힘없이 대답할 뿐이었다.
"뭔가 할 일이 있는 거라면 몰라도 매일 이 시각이 되면 거기에 멍하니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당신은 뭐 때문에 거기에 있는 건가요?"
"뭐 때문에...?"
남자는 마치 앵무새처럼 내 말을 반복했다. 한순간 내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처럼 침묵하다가 남자는 드디어 드디어 목소리를 내었다.
"정말이지 뭐 때문일까요."
웅얼웅얼 듣기 힘든 목소리로 애매하게 대답하는 남자의 말투에 화가 났다.
"당신 놀리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민폐라고!"
"...민폐, 인가요."
"그래, 민폐라고. 덕분에 사진을 찍을 수 없잖아. 이제 좀 가 버려."
"그러네요. 남에게 폐를 끼쳐서까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다고. 알았으면 얼른 비켜줘. 열차 온다고."
점점 다가오는 화물 열차의 시원스러운 경적이 들려왔다.
"덕분에 겨우 결심이 섰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남자는 내 눈앞에서 철책을 넘어서 뛰어내렸다.
금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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