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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7 나이트 호크.....1편

슈퍼스탈리온

08.06.05 21:35:53추천 7조회 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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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베트남 전쟁동안 레이더로 유도되는 대공포와 미사일에

많은 수의 항공기를 잃은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항공기가

레이더에 잡히는 단면적을 줄여야만 하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러한 스텔스(Stealth)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열을 발생시키는

흡,배기구의 문제를 해결하여 적외선 탐지를 회피하여야하고,

기체 자체의 대 레이더 반사면적(RCS-Radar Cross Section)을

줄이면 될 것이란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게된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그동안 2천억 달러를 들여 건설한

소련의 방공망은 무용지물이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방부는 여러 항공기 제작사에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기 개발을 요청했다.

록히드 사에는 스컹크 웤스(Skunk Works)라 불리우는

항공기 개발 부서인 ADP(Advanced Development Projects)가 있다.  

이 부서는 U-2정찰기와 SR-71 전략 정찰기를 개발해내는 등

그동안 놀랍도록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항공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왔다.

 

1975년, 록히드 사의  스컹크 웤스 기술자들은 새로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새로운 디자인, 더 공기역학적이고도

레이더 단면적을 줄일 수 있는 기체를 연구하고 있었다.

물론 경쟁사인 노드롭이나 제너럴 다이내믹스도 이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결국 최종경합끝에 록히드사가 승리하여 1977년, 미국방부

고등방어연구기획처(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와

2대의 원형기 제작과 테스트 계약을 맺게된다.

실제 스텔스 기의 약 60% 크기의 스텔스 스트라이크 파이터 기를 제작하는

이 계약은 헤이브 블루(Have Blue)라는 코드명이 붙여지게된다.

이 프로그램은 비밀분류 "블랙"으로서 극비로 다루어지게된다.

 

 

헤이브 블루는 록히드 공장에서 제작에 들어가게되는데, 

록히드 사는 시간절약과 예산을 이유로 이 2대의 원형기에

기존의 항공기부품들을 사용하는 허가를 얻었다. 

그리하여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 J-85를, 랜딩 기어는 A-10의 것을,

조종장치는 F-16에 사용되었던 것들을 조합하였다.

 

1978년2월, 원형1호기가 제작되어 배에실려

네바다 주 그룸 레이크로 옮겨져 테스트에 들어가게된다.

록히드 테스트 파일럿 빌 파크가 네바다 주에서 비밀리에 비행 테스트를 수행하게되었다.

2호기도 그해 3월에 제작되어 미공군 조종사

켄 다이즌 중령(후일 노드롭 B-2폭격기 테스트 책임자가된다)가 맡게되었다.

 

1978년5월4일, 1호기가 테스트 비행 중 결함으로 거꾸로 추락하게되는데

다행히 조종사 빌 파크는 비상탈출에 성공하였다.

이 사고로 헤이브 블루 1호기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조종사 빌 또한 탈출시

부상을 당해 1989년9월 은퇴하기까지 비행하지 못하고 관리자로 재직해야했다.

남은 2호기는 켄 다이즌에 의해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총 65회 테스트 비행을 실시했다.

이 테스트에서  레이더 반사면적(RCS)이 기체의 세부적인 곳까지

모두 해당됨을 알게되었다.

 때문에 랜딩기어 도어, 캐노피의 격차, 연료 주입구까지도 조정되어야했다.

10개의 나사 중 1개만 느슨하게 조여져도 RCS를 증가시킴을 알게되는 등

시행착오 끝에 1천분의 1까지 RCS를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테스트는 계속 반복 되었다.

헤이브 블루는 아주 근거리에서 보잉 E-3 조기경보기에 탐지되었을 뿐,

그 어떤 레이더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지상의 수 많은 미사일 추적 레이더들은

미사일 최소 탐지거리 내에서도 헤이브 블루를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더 흡수재인 RAM(Radar Absorbent Material)도료는

손으로 도포하였기 때문에 넓은 면적에 정밀하게 도포하는 기술이개발되어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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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브 블루 목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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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브 블루 레이더 반사면적(RCS) 테스트를 위해

여러개의 목업을 제작 중인 스컹크 웤스 기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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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군 조종사 켄 다이즌 중령이 테스트 비행 중인 헤이브 블루 2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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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록히드 버뱅크 공장의 헤이브 블루 1호기(1001). 엔진 인테이크가 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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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흡수재 RAM(Radar Absorbent Material)를 도포한

헤이브 블루 1호기가 테스트를 위해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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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브 블루는 주익을 분리시킨다음 C-5 수송기에 실려

그룸 레이크로 운반되어 각종 테스트를 받았다

 

 

 

헤이브 블루 프로그램이 성공하자 윌리엄 페리 국방차관이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도록 적극 촉구하였고, 

1978년 11월, 국회가 개발을 승인하여 헤이브 블루의 다운 스케일형이 아닌

실물기체(FSD-full scale development)5대가 생산될 수 있게되었다.

1980년 국방장관 해롤드 브라운은 카터 행정부에 기존의 예산에비해

무려 100배나 증가된 예산을 요청하여 스텔스 기 개발에 힘을 실어주었다.

 

 

1981년6월, 기체가 제작완료되어 성공적으로 운용되자

이어 양산형15기를 추가로 발주했다.

이후 국회는 총59기의 F-117A 생산에대한 예산을 승인하게된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F-117A  개발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우선 생산되어질 기체의

테스트와 이 후 생산되는 기체의 비밀스런 운용과 훈련을 위해서는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의 왕래가잦은 그룸 레이크에서는 비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프로그램의 민감한 특성 상 기존의 공군기지도 맞지 않았다.

 

 

기체 생산 프로그램은 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라는 새로운 코드명으로 작동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부지로는 네바다 주의 넬리스 공군기지(스위스영토 크기만한 기지이다)로

부터 가까운 옛 핵무기 실험장 부근으로 정해져 건설에 착수했다.

토노파 테스트 지역(Tonopah Test Range - 나중엔 그냥 TTR로 불려졌다)으로

명명된 이 기지는 큰 격납고와 1만2천 피트의 활주로가 갖추어졌으며

지원시설들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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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색 도색의 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 1호기 - YF-117A(79-10780).

1981년 6월18일 최초로 비행, 이명칭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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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 1호기 - YF-117A(79-10780) 생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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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 1호기 - YF-117A(79-10780)의 주익이 결합되고 있다.

 

 

각 형식의 콕피트 계기판넬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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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트랜드 원형기(YF-11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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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F-11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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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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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계속....

 

 

 

 

 

 

혼다어코드 08.06.05 23:11:29

미군이 전투기로 쓰기를 바랬지만, 결론은 기대이하의 성능으로 공대지의 단일 목적 항공기로 운용했습니다. 가격과 유지보수에서 돈 먹는 귀신이라서 F-22가 어느정도 배치가 되자 바로 퇴출... (전용 shelter가 있어야 하고 전담 정비원과 경비병에 한번 움직일 때마다 돈먹는 귀신이죠..) 하지만, 심리적으로 적군에 엄청나게 주고 현재의 스텔스기의 개념을 확립한 기체입니다. 형상변형과 연소가스 제어 기술을 이용해서 피탐지율을 낮추는 기술은 F-22에 그대로 녹아들어갔습니다. 항공역학자가 아닌 항공전자 기술자가 주가 되어서 설계한 항공기기에 (당시 공군에 제안한 개념 자체도 혁신적이었죠.) 항공역학적으로 매우 불안한 항공기입니다. 실제 공군관계자뿐만 아니라 설계자들도 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했다죠.. 1대가 보스니아에서 격추된 것 이외에 사고로 손실을 꽤 했죠. 주된 손실은 인재였습니다. 밤에만 비행을 하다보니 지면과 상공을 혼동한 비행착각으로 인핸 손실이 주고 낮과 밤이 바뀐채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누적된 피로였습니다. F-104에 이은 widow maker 과부 제조기로 불리웠습니다. ㅋㅋㅋ 낮과 밤을 바꾸어서 생활을 했기에 조종사의 가정파탄이 많다고 합니다. 비록 항공기 그 차제 성능으로 볼 때는 실패한 항공기이었지만, 항공기 개발사에 큰 획은 그은 항공기입니다. 이 F-117로 인해 항공기 설계 사상이 바뀔 정도였으니까요. F-117의 피를 이어받은 F-22가 이를 대신할 겁니다. (F-22의 대지공격형이 나와야 F-117을 대체하는 것인데, 예산과 기술 문제(특히 무기 수납고의 문제)로 인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간코 08.06.05 23:16:50

재밌네요 캬아~ 2편 기대됩니다! 스탈리온님 덕분에 즐겁습니다. 추천!

미납요금 08.06.05 23:23:30

역시 좋은 자료!!!....

근데 요즘 자료량이 점점 늘으세요...너무 길어서 집중력이 글의 하단부를 읽을때 쯤
현저하게 떨어진다능....

저번 스나이퍼 때도 그렇고....

제가 수퍼님의 직업을 추리해봤는데요...ㅋㅋ

제주도 거주...아직도 짬밥을 드시고 계시다는 소리...흠흠....
곧 자재분이 전역한다는 말씀....

슈퍼님 혹시 예비군 동대장님 맞죠!!!ㅋㅋㅋ

jjunius 08.06.05 23:30:00

혼다어코드 // 글 내용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란 구절이 있네요. 어떤 책에 보니까 '스텔스기가 그런 형상인 것은 그것이 항공역학적으로 유용해서가 아니다, 70년대 당시의 컴퓨터 성능이 복잡한 곡면설계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되어있더군요. 그러니까 어코드님 말씀대로 역시 항공역학적으론 영 꽈당이었던 거죠.........^^;
참고로 '해브블루' 이후에 '곡면' 형상을 한 항공기의 스텔스성능을 테스트하는 '태싯블루'란 시험기도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수집된 데이터가 B2 설계에 이용되었습니다.

jjunius 08.06.05 23:33:20

'그 책'에 FB-22란 것의 개념도가 있더군요. F-22의 날개가 미익과 붙어서 완전히 델타익 기체가 된 형상인데 하부베이가 상하폭이 늘어나있는 디자인이었습니다. 폭탄(몇 파운드?) 8발 을 탑재하도록 되어있더군요. 그게 말씀하신 F-22의 대지공격형인 모양이네요.

해담 08.06.06 01:01:20

그래도 저런 뱅기를 80년대 내놓은 미국은 역시 강대국... 하기사 국방비 그리 쓰는데 못만들어도 안되겠지...

혼다어코드 08.06.06 18:17:56

jjunius// 초기 목표에는 F-22A에게 다목적 성능을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F-22도 F/A-18이나 F-16처럼 공대공/공대지 능력을 둘다 부여하기로 되어 있었죠. 시스템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이 되니까 내부 격납고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 작은 격납고로는 미군의 다양한 유도 공대지 무기를 탑재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격납고를 확대하려하니 이것은 많은 부분을 재설계를 해야하고 가뜩이나 돈문제로 F-22 발주량이 적은 상태였기에 엄두가 안났죠. 록히드기 내부 격납고를 확대 개량한 FB-22(델타익 형태, 해군용으로 가변익 버젼도 내놓았죠.)를 내놓았지만, 미공군에서는 회의적으로 보더군요. 사실상 최소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공대공버젼인 F-22A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죠.
F-117의 형상은 앞서 말했지만, 항공역학자들이 주가 된 것이 아니라 항공전자공학자들이 주가 되어서 설계를 했습니다. 최대한 레이더파를 난반사 시켜서 RCS를 줄이는게 설계 목표였습니다. 당시 CAD 기술의 낙후도 주 원인이기도 하지만, 저렇게 직선형태의 형상이 난반사 효과가 더 크고 제작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죠. (기술 실증을 보요주기 쉽다는 거죠) 록히드 역시 이 혁신적인 개념을 공군에게 반드시 보여 주어야 발주량도 생길 것이고... 그래서 곡선형태보다 직선형태로 간 것이구요. 컴퓨터의 발달로 비행이 가능해졌죠. 이 비행기가 비행을 힘들게 한 다른 요소는 큰 후퇴각에 있습니다. 난반사를 하기 위해서 너무 큰 후퇴각을 채택을 했습니다. 후에 F-22는 이보다 적은 45도 후퇴각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고양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죠. 곡선 형태를 가지고 형상기술을 이용한 스텔스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F-22의 탄생 기간을 보시면 잘 아실겁니다. 곡선형태의 형상기술을 확보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죠. YF-22보다 YF-23을 채택했다면 좀더 쉬웠을 거라고 하지만, 쉽지 않는 기술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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