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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파묘 후기.

케이즈

24.03.18 16:29:36추천 1조회 3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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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가끔 노래를 듣다보면 노래의 초반부와 훅, 그리고 후반부가 다른 색으로 구성될 때가 있다.
  2. 그런 노래를 우연찮게 접하면 내 취향이었던 초반부는 과연 어디로 갔는지 찾다가 그냥 다 포기하고 ‘그래 얘네가 하고 싶은거 다 했나보다’하면서 넘기고 다시는 안듣지만, 어떤 때는 그 묘한 중독성에 가끔 다시 찾아 듣기도 한다.

 

나에겐 빅뱅의 뱅뱅뱅이 그랬다. 난 이 노래의 훅을 들을 때마다 ‘대체 이 부분은 왜 들어가있는 것인가’하면서도 빅뱅이니까, 지디니까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그냥 넘겼다.

 

만약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거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오컬트가 충만한 전반부와 판타지 혹은 크리쳐물에 가까운 후반부가 전혀 다른 색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연결되는 고리에 대한 설득력을 배우에게 맡겨버리는데, 그 연결고리가 매우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다.

‘뭐지? 왜 갑자기 입장이 바뀌었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영화에 대한 몰입이 깨질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분명 연결고리에서 몰입이 깨질 가능성이 충분했고, 오니가 나온 부분에 대한 이질감 때문에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멱살을 붙잡고 극을 끌고 나가버린다.

그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약했던 연결고리가 생각나지 않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급박함에 몰입하게 된다.

 

 

 

2. 영화의 전반부를 담당하는 오컬트 부분만큼은 아마 이견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전반부만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면 안되었을까? 할 정도로 잘 짜여져 있었다.

과학이 발전하고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내린 이 시대에서도 우리의 본능엔 민간신앙에서 온 터부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적인 거부감. 굳이 무속적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수사를 위해 묘를 파고 싶지만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이를 반대하는 유가족의 모습은 아직도 종종 나오는 장면이다. 심지어 그 유가족들이 딱히 민간신앙에 깊게 기댄 것이 아님에도.

 

이런 모습들은 영화 곳곳에 나타난다. 

 

무속신앙이 국내에만 머무는게 아니라 그 핏줄을 타고 물건너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보수적, 꼰대적이고 지극히 국내에서 명지를 찾아다니는 지관 김상덕의 딸은 국내를 벗어나 독일인 남편을 만나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공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상덕은 겉으론 툴툴거리면서도 크게 반대하지도 않고 오히려 딸의 성취를 자랑스러워한다.

 

고영근은 어떠한가. 전직 대통령을 염했던 명인 인증을 받은 장의사임에도 그 본인은 개신교를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직업에 영향을 미치거나 유가족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비록 속물적인 근성이 있다지만 미신적, 무속적인 것에 거부감 없이 자신의 믿음과 보고 듣는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이화림, 윤봉길 또한 완벽하게 무속인에 속하면서도 그들의 평소 생활, 옷차림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기 몸 관리를 위해 피트니스 클럽을 다니고, 클리셰처럼 사납게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이화림은 그저 그 나이대의 여자이고, 윤봉길은 몸에 이상한 문신을 많이 한 젊은이일 뿐이다.

 

만약 이 전반부가 더 이어지길 원했던 사람들의 한켠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무속신앙, 민간신앙에 대한 세계관과 묘사가 아쉬웠기 때문일수도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현대사회에 스며든 옛 것.

 

전반부가 흥미로웠던 점은 공포물로도 수준급이었다는 것에 있다. 직접적으로 놀래키는 장면도 있지만 대부분은 분위기로 압도한다.

 

이화림의 굿과 파묘로 시작된 이 불길함은 관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활개친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는 시간까지 속도감있게 긴장감을 놓지 않고 분위기를 압도하며 한번에 밀고 나간다. 그 사이사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모르고 있는 속설-영가를 함부로 집에 들이면 안된다는 것이라던가 빙의된 사람의 모습이라던가, 혼부르기, 빙의가 빠져나가고 토해내는 끝도 없는 물, 귀신이 사람이 어떻게 홀리는 지 등등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압권이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칭찬했던 김고은의 대살굿. 왜 최민식이 보면서 걱정했는지 이해가 되는 장면이었다. ‘굿을 잘 묘사했다’라는 매체물은 있었지만 저렇게 제대로 굿판에서 접신한 무당의 모습을 보았는지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예상하는 오컬트물의 클리셰를 때려박은 것과 더불어서 그것을 어색하다 느낄새도 없이 몰아치는 속도감은 정말 최고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반부의 분위기가 급변하는 것에 더욱 아쉬웠을 수도 있다.

 

 

 

3. 전후반부를 연결하는 브릿지는 흔히 말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로 풀어낸다.

 

사실 후반부보다도 이 연결부분을 더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파묘를 거부했던 김상덕이 무슨 연유에서 그걸 꺼내서 처리하는 결심을 했냐는 것이다. 동티가 난 인부의 부탁 때문에 갔다,까지는 이해가 되는 맥락이지만 그 이후에는 무당의 몫임에도 어떤 연유에서인지 관을 꺼내자 고집하고 일을 키우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이렇게 억지로 떼쓰고 고집피우며 꼰대처럼 우기는 역할에 최민식 이상가는 배우가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게 재밌는 부분이었다. 별다른 설명 안하고 우기는데도 최민식이 그러고 있으니 뭔가 전에도 어디선가 저러는거 본 것 같고(물론 다른 영화에서겠지만) 뭔가 우기니 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만약 다른 배우가 김상덕 역을 맡았다 하더라면, 이 부분은 지금보다도 더 큰 구멍이 되었을 것이다. 그정도로 영화 내에서는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저 배우가 설득력을 갖추려 했으니 따라갔다는 느낌 정도?

 

후반부를 본다면 왜 이부분을 그렇게 처리했는지 이해할수는 있다.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후반부에 있고 전반부는 그 속도감과 상관없이 이 일이 일어나는 전개과정일 뿐이었으니. 전반부를 시원하게 풀어내고 후반부 이야기를 얼른 화면에 그리고 싶어서 상대적으로 그 사이가 소홀했던걸까.

 

다른 신경쓰이는 부분이라면, 저렇게 큰 관을 고작 네명이서-그것도 나이든 분 두명, 젊은 여자를 껴서 드는게 가능했냐는 것이었다. 예전 어떤 인연으로 관을 들어드린 경험에 비추어보면 굉장히 무거울텐데?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이후에도 ‘큰 관’이라는 묘사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니 쓸데없이 더 신경쓰였달까.

 

 

 

4. 후반부는 본격적으로 대상을 ‘정확히’ 묘사하면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부터 어떤 이는 깊은 실망으로, 어떤 이는 호기심으로 영화를 다시 시작해야한다.

 

전반부가 비교적 대상과 목적이 명확하게 시작했다면, 후반부는 정 반대로 풀어내진다. 뭔지 모르겠고 목적이 뭔지도 모르겠지만(심지어 오니 본인도 잘 모른다) 형상만큼은 전반부와 다르게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얼마나 명확하냐면, 앞서 말했다시피 오컬트물에서 크리쳐물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눠서 영화 두편으로 냈으면 안됐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2부는 망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전반부의 분위기와 감정이 우리의 뇌에서 떠나기 전에 후반부를 보여줬기에 그나마 평가가 좋았다 생각하지, 만약 이걸 1부와 2부로 나눴다면….

 

2부는 크리처물과 동시에 전반부에 의미없이 던져진 떡밥을 회수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이화림의 뜬금없는 일본어(작중 배경으로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라고는 하지만), 도굴꾼들이 갖고 있던 쇠침. 김상덕이 말하던 오행. 풍수사가 아닌 고영근이 봐도 괜찮은 자리임에도 악지로 변해버린 묫자리. 왜 조부의 묘로 인해 화가 생겼으며, 관에서 나온 조부의 영이 어째서 악귀로 변해 혈통의 씨를 말리려했는지.

 

그리고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 전, 가장 뿌리를 어디로 두고 이야기를 펼쳐나갔는지도 살짝 보이는 면모이다.

 

후반부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은 ‘굳이’ 반일 감정을 건드리는 소재를 다시금 꺼낼 필요가 있었냐는 이야기도 한다.

 

이 부분의 해석은 갈리긴 하지만, 90년대 괴담(?)과 더불어 오래 묵었던 소재를 다시 꺼내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영화에도 나왔듯이 쇠물뚝에 대한 괴담은 99프로가 거짓말이었으니까.

그러나 백프로라고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나라에나 있는 신념 깊은 또라이가 정말 한반도의 정기를 끊어서 일본에게 영광을 가져오게 하려는 믿음 하나로 박고 다녔을수도 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은 측량용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와 다르게 용도가 불분명한 말뚝이 있었다는 구전을 들은적이 있으니)

 

민족의 사명을 갖고 산에 박힌 말뚝을 뽑고 다닌 사람들이 있다면, 반대쪽에도 측량과 다른 목적으로 말뚝을 박고 다닌 놈들이 있을거라는 상상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쌓아올린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보인다.

심지어 ‘쇠말뚝’이기에 땅속에 박혀있을거라는 통념과는 다르게 반전을 안배한 것도 재밌는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이 후반부의 모든 것들이 이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라스트 스탠딩’이라고 보였다.

 

이미 좋은 터가 남지않은 것을 넘어 이제는 화장을 많이 선택하는 시대의 흐름. 상조회사에게 흡수당해 점점 더 개인의 설자리를 잃어가는 장의사. 전국시대라는, 먼 과거의 시체를 매개체 삼아서 저주를 거는 시대착오적인 풍습. 쇠말뚝이라는, 이제는 괴담으로 치부되는 흘러간 이야기.

 

전반부가 현대사회에 적응된 옛것의 이야기였다면 후반부는 현대사회에서 허용되지 못한 옛것이 사라지는 이야기로 보였다. 그렇다고 한다면 왜 이화림이 해결사가 되지 못했는지, 윤봉길은 왜 가장 처음으로 무력화 되어서 리타이어했는지에 대해 설명이 된다.

이건 오래되고 낡은 남아있는 자들이 풀어내야할 이야기이고, 새로운 시대에 서있는 것은 젊은 세대들일테니까.

 

다만 낡고 오래된 것을 풀어냄에 있어서 남게 된 트라우마, 상흔은 과연 앞으로 나아가야할 이들에게 어떻게 남을 것인가.

이런 숙제가 남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석하려함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을 본다면 감독이 분명 의도하긴 한 것 같다.

 

 

 

5. 감독의 후속작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하다.

감독이 파묘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후반부라고 느꼈다. 그리고 후반부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라 본다면, 사실 이화림이나 윤봉길이 그렇게 부각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또한 영화 내에서 풀어지지 않은 이화림과 일본에 엮인 이야기도 단편적인 장면으로만 남아있을 뿐, 설명이 명확히 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부를 할애해서 이화림을, 윤봉길을 인상깊게 그려냈고 관객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각인 될만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를 쓰기도 했고)

 

영화 내에서 한국 영과 일본 영의 차이를 말하는 부분이 굳이 있는 것 보면 후속작에서는 그런 면이 좀 더 부각되지 않을까?

한국에 있는 영가라고 원과 한만 남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달랠수 있는 존재로 본다면 일본영가는 봉인하고 묻고 퇴마시켜야할 존재로 묘사되곤 하는데 사실 이번 작의 오니 또한 그런 고정관념처럼 이용당한 존재여서, 후속작에서는 이런 차이를 부각시키는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네이버에서 영화 예매하기전에 봤을 때, 5점 만점에 3.5점이던데 오락영화로 본다면 그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여진다. 

물론, 전반부에 대한 만족감이 큰 관객들은 전체적으로 더 낮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거다.

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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