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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의진 님의 글을 읽고 제가 살아온 인생담을 써봅니다.

vsmint

20.05.10 02:27:13추천 12조회 1,654

원래는 아래 서풍의진 님이 쓰신글에 댓글로 달려했던 글이지만 

같은 주제로 다른분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어 새로 글을 쓰는것이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이가 딱 제 또래 십니다. 

거기다 오랜시간 뭐해먹고 살아야하나 힘들게 고민했던것도 비슷합니다. 

내 나이또래 사람들은 다들 뭐해먹고 살아서 밖에서 보면 비싼차 타고다니고 비싼 아파트에 사나 싶어 

항상 궁금해하곤 했었습니다. 

저같은 경우 어딘가 하나에 크게 몰두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크게 재능이 있는 분야도 없었고 

머리도 그다지 별로 좋은편이 아니라 뭘 해야하나 참 어린시절부터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나이 되고보니 나만 이런고민을 하는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항상 하는 고민이란걸 깨달았죠. 

극히 일부의 다른사람보다 월등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요. 

할줄아는것도 별로없고 잘하는것도 없는 제가 어쩔수없이 노렸던건 돈, 재능, 관심 이 세가지가 교집합을 이룰수 

있는 것을 찾는 거였습니다.

돈되는게 가장 중요하지만 관심이 없으면 계속 해나가기가 어렵고, 또 관심이 있어봐야 내가 그 방면에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 해도 남들보다 발전하기 힘들기에 이 세가지중에 교집합을 찾아야 하는것이었습니다.

 

이 돈, 재능, 관심 세가지의 교집합을 찾아라 이 말 또한 제가 어떤 일본인 저자가 쓴 책에서 봤었던 글이었고요. 

세상에는 참 많고 다양한 업종의 일이 있죠. 그중에 내가할일 하나없을까? 싶을 수 있지만... 

 

네. 없습니다. 막상 찾아보고 나한테 내 상황에 맞는일 찾으려하면 없어요. 정말 없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되겠고 저건 저래서 무리겠고 요건 다른사람과 내가 경쟁이 도저히 안될거같고... 

끝도 없었죠. 대체 어떻게 나한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게 있기나 할까.. 

 

저는 그냥 위의 세가지가 정확히 교집합을 이루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만이라도 세가지에 다 걸리는걸 찾아보려 

애썼습니다. 그러고 결국 찾아낸게 제가 다른사람 가르치는걸 그나마 깨알같이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재미있는건 아니었죠. 그나마 다른일에 비해서 약간의 재미나마 느끼는 정도??

 

그런데 그게 결국 제 평생의 직업이 될 줄은 당연히 꿈에도 몰랐습니다.

 

40이 제법 넘은 지금이야 겨우 그나마 남들과 비슷하게 벌고 살게 된거 같지만 여전히 프리랜서 일이다보니

정말 들쭉날쭉 합니다. 물론 잘버는달은 월 8백 정도는 순수입이 되고 평균 5백 정도는 현재 벌고 있지요.

(0.1의 과장이 없는 수치입니다)


능력좋고 훌륭하신 분들이 보기에는 정말 보잘것 없는 정도이지만 제 주제에 이렇게 오기까지 

정말 멀고도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저라는 사람의 인생은 항상 돈없고 힘들고 뭐하나 하고싶어도 돈없어서 하지 못하고

평생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줄만 알았습니다. 


왜냐면 젊은시절 그토록 이력서를 많이 넣어도 단 한번 회사들에서는 연락조차 오지 않았었고

취직이 안되 부산이 고향인 제가 서울에까지 이력서 넣을곳이 없나 기웃거리며 여기저기 다 쑤셔넣다가

수백곳중에 겨우 한곳에서 연락이 와서 처음 취직됐다고 기뻐하며 눈오던 새벽에 캐리어 끌고 기차타러

부산역 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눈길에 캐리어 뒤집어져서 바퀴깨지고 그 뒤로 겨우겨우 식겁해서

그거 끌고 서울까지 갔었던 기억도요..


그렇게 처음 취직해서 지냈던 서울.. 돈이 없어서 폐쇄공포증이 있는 제가 창하나 없는 고시원에 방을 잡고

딱 일자로 누워 잘 공간과 정확히 그만큼의 공간이 옆에 의자놓을 공간으로 허락되었던 그 좁은 고시원에서

몇년을 지내며 살았습니다.

 

서울까지 와서 구한 일자리였지만 파견직이었다 보니 대우가 좋을리가 없었고 급여도 좋을리가 없었고

평생 학교다니며 받아보지 못한 무시와 천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또 서울에는 왜 그리 능력 좋은사람들이 

많은지요.. 저도 나쁜머리로 공부를 꾸역꾸역 하긴 했었지만 저와는 비교도 안되는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더군요.

이때 평생 안폈던 담배를 입에대기 시작해 하루에 1갑반을 피는 골초가 되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제가 사무실서 일하다 잠깐 쉬러 건물 옥상에 담배피러 올라가곤 했는데 그때 다른 사람들은 바깥 구경한다고

난간근처에 가서 아래를 내다보며 담배를 폈지만 저는 감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너무나도 힘들어서 난간 근처만 가면 제 몸이 자동으로 난간을 붙잡고 뛰어 넘으려고 자꾸만 반사적으로

움직이더라구요. 미치겠어서 도저히 난간 근처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직이었지만 IT관련 회사다보니 하루평균 근무시간은 12시간.. 툭하면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 했었고

당연히 이 시기에는 야근수당 같은거 따로 챙겨주지도 않았었고요.

 

그저 이 당시 제 삶의 낙은 금요일 회사가 약간 일찍 마치면 회사 바로앞에 있던 롯데백화점 가서 백화점 마칠시간

8시가 임박해서 떨이로 팔던 튀김류와 샐러드 먹거리들 만원어치 사서 편의점 가 맥주를 사와서 고시원 방에 혼자 앉아

맥주 마시는게 제 유일한 삶의 낙이었습니다. 그거 하나 하려고 일주일을 버텼습니다.

 

그러다 나이는 먹어가고 급여는 웃기게도 해가 갈수록 더 낮아지고(회사 사정 안좋다고) 미래 안보이는 파견직 일을 계속 하기가 힘들어 그만두고 다시 부모님 계시는 부산 본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뭐 하나 잘하는것도 없고 뛰어난게 없다보니 할수 있는게 없더군요. 내가 잘할수 있는것도 없는거 같고..

부모님은 그러고 있을 바에야 공부나 더 하게 대학원이나 가라고 하셔서(부모님 두분다 박사학위 있으신 분들이라)

취직도 안되고 할게 없던 저는 부모님 말씀대로 대학원을 갔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이력서를 넣던 중 다시 또 웃기게도 서울 근교의 분당으로 취직이 되어서 거기까지 다시 

올라갔었더랬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물론 예전에 다니던 회사보다는 급여가 높아서 

그래도 돈 모으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여기도 IT관련 업종이었고 보통이 12시간 근무.. 주말에도 역시나 바쁘면 나와야만 했습니다.

거기다 회사 근처 고시원이었다 보니 거의 뭐 야근에 주말근무의 연속이었죠. 제 삶이라곤 없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정말 괴팍한 직속상관을 만나 말 그대로 세상살이 어렵고 돈벌기 어렵다는걸 뼈저리게 느꼈다는 겁니다.

상관이 제 업무 평가와 저에대한 평가를 위에 제출하는 인간이다 보니 저는 뭐.. 꼼짝도 할 수가 없었죠. 여기서 짤리면 

또 어디를 가나 싶은 생각에요.

 

이 상관의 또라이짓에 갑질중 가장 기억에 남는것중의 하나가

 

저는 회사근처 살다보니 분당에 있는 고시원에 살고있었는데.. 어느날 새벽에 갑자기 전화가 오는 겁니다. 

자다 깨서 "아 ㅅㅂ 어느 미친놈이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 하며 전화기를 보니 이 상관인겁니다.

시간은 새벽 3시 반....

 

잠이 확 깨더군요. 아니 내가 뭘 잘못했나? 사고라도 쳤나? 그냥 회사서 내 성격 안내보이고 죽어지내며 굽신굽신 

살아온 기억밖에 없는데 이 야밤에 이인간이 대체 나한테 왜 전화지 별 생각이 다 들면서 전화를 받았죠..

 

술이 꽐라가 된 목소리로..

"ㅇ ㅑ ㅇ ㅣ ㅅㅂ 새끼야.. 지금 잠이 쳐오냐??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평소에 저한테 갑질하고 지랄맞게는 굴어도 욕은 절대 쓰지 않는 상사였기에.. 받자마자 

저 소리를 해대는데 받고도 한참동안 멍... 했습니다. 이게 뭐지? 내가 뭐 사고쳤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거 

없는데??

 

"아.. 아니 실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 밤에?? 무슨 일 있습니까??"

 

"아 ㅅㅂ 몰라 이새끼야.. 빨리 텨와"

 

라고 소리를 지르더니만 퍽.. 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뭐지?? 잠이 확 다깨더군요.

그 길로 바로 담배하나 꼬나물고 밖에 나가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받더군요.

또 했습니다.

또 안받더군요....

 

"이 dog ㅅㅂ ㄹㅇ 진짜.. 어쩌고저쩌고.." 욕이란 욕은 입에서 다튀어나옴.....

 

그런데 분명히 오라고 했단 말입니다. 저보고

분명히..

 

아니 ㅅㅂ 어딘지나 알아야 가든가 말든가 하죠..

그래서 계속 다시 욕을 욕을 뱉어가며 전화했더니만 결국 받아서 또 고래고래 ㅈㄹㅈㄹ 술꽐라되서..

 

"네네 가겠습니다. 그런데 어딘지는 알아야 갈거 아닙니까"

 

해서 결국 어딘지 듣고보니 서울 한복판..... 분당에서 그 새벽에 택시타고 가면 5만원돈 나오는 곳이었죠.

그런데 별수 있나요? 새벽에 대충 씻고 오라는데로 택시타고 갔습니다. 아휴....

 

도착하고 보니.. 제 생에 그런곳 처음 가봤습니다. 저는 그저 학교다니며 책보고 도서관 다니거나 피시방가고 헬스장 

가서 운동하는게 전부였던 찐따?? 였기에..

 

바로 룸사롱이었습니다.

 

처음 와본데다 보니 잔뜩 쫄아서 오라고 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미 쿵짝쿵짝 난리법석...

들어가니 담배각 집어던지며 담배 사오라 시키더군요. 그러면서 처음보는 놈들도 다들 담배각 던져주며 난 이거 난 이거..

이 ㅈㄹ.....

 

제가 성격이 그렇게 착한놈이 못됩니다. 깽판도 잘치고 어릴땐 판 뒤집어 엎기 달인이었습니다. 그냥 수틀리면 

다 뒤집어 엎곤 했었어요..... 평소엔 정말 온화하고 착한데 어느 적정 선을 넘어버린다 싶으면 상대방이 놀래 

환장할 정도로 뒤엎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물론 이러다 싸운적도 많았죠.

 

속에서 천불이 나 올랐지만 여기서 엎었다간 그날로 회사 짤리고 말거란 생각에 그냥..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근처 편의점서 담배사서 들어가니.. 노래를 시키더군요.

 

아.. 대략 왜 불렀는지 나오더군요. 제가 어릴때 한때 보컬했었다는걸 알고 분위기 띄워보라고 노래시키려 그 새벽에 

저를 불러냈던 거였습니다. ㅎ ㅏ ㅎ ㅏ... 진짜 미친...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이 접대자리였는데 지가 계속 술상무 접대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지 밑에 저 불러서 갑질해보겠다고 분당에 있는 저를 서울 한복판으로 새벽 3시반에 불러냈던 거였습니다.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었겠지만.. 시키는대로 노래도 다 하고 분위기 맞춰주고 했었으나 양주를 계속 저한테 먹이는 겁니다.

저는 술을 잘 못합니다. 소주 한 반병이 주량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양주를 무조건 원샷 스트레이트로 마시라 하고 

한두번 마시고 도저히 못마시겠다 하니 분위기 판깬다고 말 그대로 dog ㅈㄹㅈㄹ 을 하는겁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래서 결국 또 마셨고.. 완전 눈앞은 핑핑 돌고 오바이트 쏠리고.. 곧 화장실 달려가서 목구멍 손가락을 찔러서 

다 토해내고.. 토해내는데 또 왜 그리 통증이 심하게 아프던지요..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렇게 겨우겨우 다 토하고 술자리 기다시피 들어가니 또 원샷 원샷..... 또 원샷..

 

그 뒤로도 몇번이나 원샷하고 화장실 기어가서 다 토하고.. 나중에는 식도가 상했는지 피도 나오더군요.

진짜 얼마나 dog 같았는지.......

 

그러고 새벽 한 5시반 되니 거래처 사람들 집 들어가게 대리 부르라 해서.. 완전 정신나가고 핑핑 도는채로 

대리 불렀고 차 타고 가는거까지 제대로 보내드려라 해서 또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고 그 ㅁㅊ 놈은 그 꽐라된 상태로 지 차몰고 미친 음주운전을 하며 집에 가더군요.

사실 그때 속으로 빌었습니다. 쳐박고 뒤지라고...근데 이런 ㅅㄲ 는 절대 또 뒤지지도 않아요.

 

다 끝나고 다시 택시타고 고시원 들어오는데 택시에서도 얼마나 오바이트가 나오던지 몇번이나 내려서 올리고..

그러고 고시원 들어와 누우니 진짜 누워있는데 눈앞이 정확히 @_@ 이랬습니다. 세상이 빙글빙글..... 

누워서 오바이트 하고 배게 다 버리고..

 

그런데 마지막 그 상사놈의 말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그 다음날이 평일이었어서 출근해야 했는데 내일 늦지말고 

출근해라 였습니다.

 

누워서 오바이트 하고 온몸이 벌벌 떨리고 몸을 서있을수도 기어서 움직일수도 없는 상태에서 겨우 울고불고 버티다 

고양이 세수에 양치만 하고 다시 회사에 기어서 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거의 기어서요..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몸이 벌벌 떨리면서 눈앞이 핑핑 도는 상태로 그날도 10시간 넘게 일했습니다.

 

상사 ㅅㄲ요? 12시 넘어서 쑥냄새 풀~풀 풍기면서 출근하더군요. 찜질방 쑥탕 갔다온거였습니다.

아주 dog ㅅㅂㄹㅁ........

 

그러면서 또 첫마디가 "야.. 출근 제대로 했냐?" 였습니다....

 

그날 하루종일 점심저녁 다 못먹고 고시원 들어가며 또 줄담배 피다가 잤습니다.

이런 미친 짓거리를 그 뒤로도 여러번을 더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때 제가 있는 회사는 계열사였고 제 상관 ㅅㄲ가 바로 본사의 술상무였던 거였습니다.

그래서 갑질하려고 저를 술자리에 불러내곤 했던거였죠.

 

이 얘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해주면 아니 대체 안 뒤엎고 뭐했냐고 하나같이들 말합니다.

그런데 아마 지금도 그럴거 같은데 저때만 해도 레퍼런스 콜이 진짜 많았습니다.

 

이력서가 들어와서 그 사람의 이력을 살펴보다 그 사람이 앞서 일했던 직장에 전화를 걸어 이 사람 어땠냐고 물어보는게 

바로 레퍼런스 콜입니다. 만약에 그냥 제가 뒤엎고 나왔으면 그 썩을 레퍼런스 콜에 의해 아마 그 뒤로도 제 회사 

인생은 줄창 막혀버렸겠죠?

 

이걸 알고나서 그렇게 미워하던 상사 ㅅㄲ 한테 퇴사하기 전에 그동안 감사하다고 선물까지 주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정말 회사생활 사회생활 돈벌기 힘들다는걸 절실히 깨닫고 그 뒤로는 무슨 일이든간에 제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추가적으로 공부도 계속 했고요.

 

이 회사를 나와서 또다시 대학원을 들어갔었고 졸업해서 석사학위만 2개를 만들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뭐같이 빌빌거리며 그래도 잘 빌붙어서 버틴 덕에 번 돈으로 어릴때부터 그토록 가보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지 못했던.. 해외 연수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유학을 갔다왔고 그 뒤로는 공기업에도 들어갔었고 공기업에서 해외출장 다니며 업무보는 일을 하다가 

지금의 4개국어를 하는 여친을 만났고, 너무나도 빡빡한 공무원식 체계에 환멸을 느끼고 나와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맞는다는것을 느끼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공기업을 자진 퇴사했고, 이때 인연이 있었는지 여친도 퇴사를 하게되어 

현재까지 8년 이상을 잘 만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당시 나이가 30대 중후반인데 회사는 전부 내발로 다 때려쳤고.. 뭐해먹고 살아야 하나 정말 막막했습니다.

여기서도 너무 안맞고 힘들어 평생 안가본 정신의학과에 다니며 정신과 치료에 약을 달고 살며 회사를 다녔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몸에 별의 별 이상이 다 오더군요. 이꼴이니 도저히 더는 다닐수가 없었죠. 

 

대부분 회사 그만두기 전에 다음회사 갈곳 정하고 그만두라고들 하는데 저는 공기업 다니며 여기서도 또 평균 14시간 

하루에 일했고 주말에는 출장가기 일쑤였으며 일해서 제출하면 거지같이 했다고 맨날 욕먹는게 생활이었습니다. 

여기 부장도 또라이였거든요.

 

공기업에서 하루 14시간 일한다고? 제가 얘기하면 전부 안믿습니다.

제가 한콘진이나 시청이나 시의회등에 내는 야근장부에는 전부 저는 야근 안하고 칼퇴한걸로 기록되 있습니다.

왜냐? 부장이나 팀장이 6시까지 일하고 퇴근한걸로 작성해서 내라고 말하고 야근장부를 건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건네주면 제가 시키는대로 써서 내야지 자기 도장 찍어서 결제 올리라 합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저는 야근 안한거죠 ㅎㅎ 실제론 미친 하루 14시간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한가지.. 이렇게 회사를 다니며 힘들게 살면서도 서울에서 살때부터 짬나는 시간이나 주말에 해왔던게 있었는데

바로 학생들 영어과외를 하는 거였습니다.

인터넷 과외사이트등을 찾아서 수업구하는 학생들을 찾아 전화돌리며 가서 상담하고 수업 성사하고.. 성사되면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학생을 가르쳤었습니다.

 

사람 가르치는게 약간이나마 재미도 있고 돈도 벌수 있으니 놀바에야 이런거나 하자 생각하고 해 온게

결국 10년... 15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게 제가 공기업을 그만둘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오랜시간 공부해왔고 오랜시간 학생들을 가르쳐서 그 암기력 안좋고 머리나쁜 제가 그냥 대충 달달달 외우고 있어서 

바로 읊을수 있는것만 해도 이미 두꺼운 책 3권이상의 분량이상의 정리된 문법을 이미 다 암기해버렸더군요.

암기력 안좋아서 그렇게 학창시절 외우는거 못해서 고생했던 제가 말이죠.

 

그리고 지금은.. 어느덧 상당한 경력을 지닌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들이 대부분 전교1등학생, 과학고 진학준비 학생, 

성인 토익이나 공무원 준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토익이면 토익, 공무원 시험이면 시험, 수능시험이면 수능까지.. 문제 유형까지 다 파악해서 어떠한 단어나 

구절이 나오면 뒤에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오겠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겠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른 유형으로 

바꿀 수 있고 어느 출판사의 어느 저자가 어떤식으로 문제를 내는지까지 다 익히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워낙에 학생수는 줄어드는데 과외수업 하고자 하는 엄청난 스펙의 선생님들은 즐비하고.. 그 경쟁을 뚫어야 하고.. 

내 실력까지 키워야 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교생들 가르치면 보통 12시에 수업이 다 끝나는데 마치고 집 오면 보통 1시.. 1시반.. 그리고 그때 씻고 그 다음날 

있을 수업준비 하면 평균 3시~ 늦으면 4~5시까지 준비를 하게 될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르면 저희 집으로 와서 수업하는 성인 여학생이 11시에 오기 때문에 몇시간 못자고 일어나서 

또 하루종일 수업하곤 합니다.

 

점심, 저녁먹을 시간도 따로 없어서 길 가다가 조금 빨리 도착되면 근처 편의점 들어가서 삼각김밥 후다닥 길 걸어가며 

먹고 그러고 학생집 들어갑니다. 맨날 배 곯아서 있고 식사시간이 일정치 않아 위염 달고 살고요.

 

대중교통 타고는 도저히 수업 시간에 맞출수가 없어 전기자전거를 하나 사서 버스타면 1시간, 1시간 반걸리는 거리를 

자전거타고 돌아다니며 수업합니다. 밥도 제때 못먹고 전기 자전거라도 오르막길은 죽어납니다.

 

이렇게 일하며 제 경력 만들었고 돈 벌어서 겨우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라서 또 언제 수업 다 빠져나가고 월 수입 2백이하가 될지 모릅니다.

 

항상 돈도 못벌고 평생 돈없어 술도 천탁같은데 가서 막걸리만 마시던 제가 올해 이나이먹고 처음으로 어버이날에 

부모님 용돈도 몇십씩 챙겨드리고 신차도 사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제 인생에 이런날이 올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항상 힘들고 돈없고 고생만 할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쩔수 없이 한거였지만 뭐라도 계속 공부하며 노력했더니만 결국 이런 날이 오네요 제게도....

 

정말 주저리 주저리 인생살아온거 다 써놨지만 저의 결론은 이겁니다.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로 다 힘들고 안그래 보일뿐 안힘든사람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가족사가 문제고 가족간에 화목하면 돈이 너무 없고 궁핍하고 아니면 가족사도 엉망이고 돈도 없고

그나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선진국에 태어났으니 이렇게 인터넷 보고 글이라도 쓰고 하소연이라도 하지

동남아나 남미쪽 인도쪽 평민이나 대다수가 사는 빈민가에 태어났으면 정말 거지같이 살다 이미 이나이까지 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좋은 곳에 부모님 덕으로 운좋게 잘 태어나 살게 되었으면 그 이후 나머지는 내가 내 노력으로 계획세우고 무언가를 

배우고 나를 발전시켜서 내가 나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서풍의진님께 드리고픈 말은..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공부될 수 있는 업종을 찾으시고 

돈, 관심, 재능이 나에게있어 약간이라도 충족이 되는 일이라면 지레 포기하기 마시고 꾸준히 오랜시간 연마하고 

갈고 닦으세요. 공부하고 노력해서 얻는 실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도 않고 다른사람이 따라올 수도 없습니다.

 

너무 길게 쓰다보니 주제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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