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짱공유에 들렀는데 이곳에서도 제 모교에 대한 일이 이슈화 되어있는 걸 보고 몇자 적습니다.
요즘 과고생들의 입시 성향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제가 석사과정을 밟으며 학교에 있을때 까지의 직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말씀을 드리자면, 이미 설립 목적과 맞지 않는 학생들이 수없이 많이 입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자체의 교육제도상의 문제이며, 또한 부차적으로 기존 6,700명의 학부 정원을 1000명으로 늘림으로써
일어난 일이라는 사견을 달고 싶습니다. 자살 문제는 단순히 학부에서의 과잉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진학해선
안될 학부생'들이 수도 없이 많이 진학했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과연 R&D 인재를 육성하는 영재 학교인가?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때 카이스트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고 이은주씨, 채림씨 등이 출현했었지요.
제가 입시를 고민할땐 인기가 정말 최고조 였지요. 원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최고선호가 서울대였지만(부산과고기준)
카이스트가 이를 누를 정도로 인기가 상승했을 정도였습니다. 원래는 포항공대(현재 포스텍)와 저울질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과고출신이 비교적 입학하기도 수월한 이유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카이스트를 선호
했습니다.
허나 학부를 졸업하고 입학 후 수년이 지난 시점에 학교를 보니 점점 심해지는 사교육 과열, 선행 영재교육 학원이
생겨나면서 '저런 애가 들어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공학이나 자과에 맞지 않는 후배들이 많이 들어 온다는걸
느꼈습니다. 공부가 좋아서, 재미 있어서, 정말 재능이 있어서 들어왔다기 보다는 '만들어진 영재'라고 생각되는
학생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진 느낌이었습니다. 요즘은 흔한 진학경로라고 생각하는 선행교육-과학고-명문대or특목대
로 입학한 케이스들 이지요.
자의적으로 입학한 그렇지 않은 케이스에 비해 대부분 전공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어떻게든 학점은 유지하고
수업을 따라갔지만 뭔가 목표의식도 없고 흥미도 없는 후배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동아리 활동만 봐도 표시가
많이 날 정도였습니다.
2, 과연 언론, 여론은 문제점을 제대로 짚고 있는가? - 총장의 교육방침이 문제의 전부인가?
제가 학부생일때만 해도 의전원, 치전원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매우 적었습니다.(당시 이제 막 전환된 시점이라
그럴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자과 관련 전공자가 아닌 많은 공학부생들도 학점이 어느 정도 되면 다들 디트,미트
한번씩 준비하려 하고 텝스 준비도 열심히 하더군요.(이는 포스텍 다니는 친구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애초에 선발 목적과는 전혀 반대인 양상이죠. 차라리 의예과를 진학하던지, 명문 종합대학을 갔어야할 학생들인데
(그렇다고 종합대학의 연구개발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의 경우 특목대보다 더 좋은 아웃풋과
환경이 조성되고 우수한 교수님들과 인재들이 집중되어 있기에 과고생들한테도 더 선호되는게 사실이니까요)
카이스트로 진학을 한 애들이지요.
솔직히 영어수업을 한다고 해서 그것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자살한 학생들이 지나친 과잉교육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몰고가며 서총장을 질책하는 여론도 우습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전공서적이 영어로 되어있고, 논문이나 연구자료 역시 영문판을 읽는게 대부분인데
수업에서 사용하는 영어가 흔히 생각하시는 그런 영어가 아닙니다. 영어를 잘 못해도 전공 어휘에 익숙해져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 때문에 힘들어 했다면, 전공서적도 못 읽는거나 다름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입니다. 원어민처럼 현란하게 영어를 구사한다거나 복잡한 영문법으로 강의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진학을 하는 케이스라면 이후 대학원과정에서도 그 정도 영어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학원 진학에 꿈이 없었다거나, 전공공부 자체만으로도 흥미가 없어 지나치게 힘들어 했다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겠지요. 아무리 진로는 개인의 선택이라지만, 이미 어느정도 진로 방향을 염두해두고 입학을 하도록 권장하는
카이스트에 진학한 것도 일부의 문제이며, 그렇게 진학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중등교육 과정 자체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재능, 영재성이나 진로에 합목적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여러가지 길을
제시해 줄수 있는 종합대로 진학하는 것이 이들에겐 훨씬 더 적합했을 테니까요.
3. 재학생 및 졸업생들의 중론, 문제해결인가? 책임전가인가?
일부는 유독 서총장에게만 질책을 가합니다. 언론 역시 여론을 그렇게 형성해 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구요.
앞서 1,2에서 말한 문제점은 짚으려 하지도 않은채, 단순히 '연구,기술에 영어가 필요하지도 않는데 과잉교육
으로 학생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논리로 자극적인 기사전달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근본적인 문제는 대입을 위한 한국중등교육의 문제, 영재교육의 문제, 기타 사교육의 문제, 사회 진출에
있어 학력의 비충이 지나치게 큰 문제인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실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의 경우에는 졸업 후 전문대학원을 진학할때 매우 유리한 입장에 있는게 사실입니다.
의전원, 치전원에 진학한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봐도, meet,deet 성적이 좋은 편도 아닌데 기타 대학교의 학생들보다
왠지 쉽게 들어간다는 느낌도 받았으니까요. 당시에는 자소서를 잘 써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느꼈지만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학벌 때문이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또하나 웃긴 사실은 카이스트에서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와
같은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행정고시 기술직도 아닌 재경이나 일행같은 행정직으로
말이죠. 이 비율도 요즘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R&D, 기술 분야에 대한 천대도 한몫 하거니와 애초에 흥미도
크지 않고 '편하고 안정적이고 지위가 좋은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입학생들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벅 각설하고, 대다수의 학생들의 중론은 서총장을 질책하고 사퇴시키려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언론에서는 왜 대다수의 학부생들의 의견은 생각치도 않은채, 학생회나 일부 학생들의 멘트만을 기사화하고
또 이를 보도하려 하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이런 제도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일까요? 아니면 이미 이렇게
흘러온 잘못된 한국교육제도를 고치기엔 역부족이니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일까요?
4. 결론, 난제에 대한 해결보다는 급한 불 끄기식의 언론과 정부의 대처
애초에 충청권을 연구개발 산업의 메카로 발전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설립된 곳이 카이스트 입니다.
수도권, 전라권, 경상권 등에서의 전문화된 연구개발 기술을 실현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조성된 연구단지 이기도 하구요.
또한 교육목적 또한 뚜렷합니다. 이는 학교 홈페이지나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하지만 지나친 교육열과 학벌지상주의는 합목적한 인재가 입학하기 더 어려워지게 만들었습니다.
각종 보습학원, 입시학원에서의 과학고반, 선행교육반 또 영재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각종 사교육 등은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좋은 학벌을 취득하기 위한 것으로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에 둔감한
적성에 맞고, 재능있는 인재들은 오히려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한 사교육으로 탄생한, 과고등
특목고 진학에 맞춤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이기기에는 단순히 재능이나 영재성, 흥미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학이 원하는 인재는 후자임에도 불구하구요.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은 생각치도 않은채, 일단 붉어진 문제부터 기사화하고 여론의 관심을 이끌려는
언론사나 급한불부터 꺼야겠다는 정부관계자들의 안일한 생각은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서총장 사퇴와 카이스트 교육방침의 변화로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당장 급한불
끄기식의 대처나 여론 형성은 이런 자들의 안위와 욕심에만 관심을 둔 처사이지 자살한 후배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