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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8-자본가의 자유와 노동자의 평등(첫 번째)

l죠리퐁l

22.03.30 06:35:48수정 22.03.30 06:36:13추천 1조회 2,971

자본가의 자유와 노동자의 평등(첫 번째)

자유는 <지본가>가 좋아하는 사상입니다. 자유의 종류에는 정당 결성과 해산을 명시한 정치적 자유.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주거의 자유. 개인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경제적 자유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사회적, 경제적 자유 속에 내포된 의미를 통해 <자본가>와 <기득권>이 따르는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확인하고, <노동조합>이 <사회주의 이론>을 지향하는 이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덧붙여서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같이 확인해보겠습니다.

1. 자유와 평등

<자유>는 누구나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지금은 마치 당연한 권리처럼 누리고 있죠. 인간은 자연계에 존재할 때 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습니다. 자유라는 개념을 알고 추구했다기보다는 원시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삶 자체가 바로 자유였습니다. 사회를 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은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속박되이 않는 삶은 집단을 형성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집단(사회)과 만나 제약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소유라는 개념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정치와 접목되어 계급의 등장과 함께 개인의 자유는 극히 일부 사람만 누리는 특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민혁명과 더불어 자유는 다시 개인에게 돌아갑니다. 자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론이 난무하면서 자유주의 가 팽배한 시대가 도래합니다.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꿈꾸고 바랐던 세상이 근대화 시기에 왕정의 몰락과 함께 도래한 것이죠. 하지만, 자유주가 자본주의와 접목하면서 보이지 않던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개인의 사유 재산을 허용하는 경제적 자유는 어느 누구나 누리는 자유 입니다. 재화를 내가 벌어서 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믿음은 당연해 보이지만, 자본의 독점에 이르는 단계가 되면 그 자유가 자칫 사회 질서를 교란하는 문제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수 천억 원의 재산을 모아서 이를 상속하면 당연히 상속세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상속세라고 하는 세금 자체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속세는 개인이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스스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히 사유 재산의 자유가 존재한다면 그 재산을 온전하게 물려줄 자유 또한 개인에게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면 내가 열심히 땀 흘려 번 돈으로 집을 샀는데 취득세라는 세금을 국가에 내야 합니다. 등록세도 있습니다. 개인이 자율적인 시장 활동에 따른 물건에 대해서 취득한 세금과 등록한 세금을 매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사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등록세야 국가가 내 재산을 인정해 주는 용도이니 필요하다고 해도 내 돈으로 내 집을 취득했다고 왜 세금을 내야 할까요? 게다가 보유한 부동산이 일정 금액이 넘으면 종합 부동산세라는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마치 날강도에게 돈을 뜯긴 기분이 듭니다. 이런 사유재산을 마음 대로 처분하고 싶은 마음을 거대 기업인 ‘00 전자’가 수 조원을 상속하는데 적용해 보면 답은 바로 나옵니다. 상속자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상속세를 안 내고 있습니다. 국가가 왜 개인이 가진 사유 재산의 자유를 침해할까요?

자본가는 경제적 자유를 추구합니다. 특히 완전한 자유를 추구합니다. 자본가는 경제적 자유를 통해 개인의 부를 극대화할 수 있으며, 마땅히 지불해야 할 돈은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무한 경쟁 체제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죠? 무한경쟁 사회. 마치 동물의 왕국과 같은 세계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인도주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뭐 다른 예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시장 경쟁 체제에서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을 쥐고 흔드는 갑질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합법적이라고 하는 사례에서도 약육강식의 논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짓이 기업 간 거래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발생합니다. 그 일 속에서는 수많은 종업원과 가족이 한순간에 길바닥에 내버려질지도 모르는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오로지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법적 조건만 갖추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자본가가 좋아하는 자유의 개념을 인간 세계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은 자연계에서는 모두 동일해 보입니다. 옷을 벗고 맨 몸 그대로 있으면 누구나 다 똑같이 보입니다. 눈 두 개, 코 하나, 팔과 다리 등. 아프리카 초원이나 아마존 밀림에 내버려 두면 하루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도 다 같습니다. 하지만, 자연계에서 인간 개인은 모두 다릅니다. 사람마다 달리는 능력이 다르고, 사람마다 쓰는 힘이 다르고, 신장. 몸무게 다 다릅니다. 평등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만일 빵이 3개가 바닥에 놓여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 사람은 시속 40Km로 달리고 한 사람은 시속 20Km로 달린다면 그 빵은 모두 빠른 사람의 차지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빵 3개만 얻을 수 있다면 느린 사람은 언젠가는 굶어 죽게 되겠죠. 이 것이 자연계의 법칙이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류는 자연계에 그대로 존재하는 한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이 바로 강자만이 살아남는 자연 그대로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인간은 혼자서는 생존하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집단을 이루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간은 집단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규칙>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위에서 말한 느린 사람이 빠른 사람보다 <느리지만 힘이 더 세다.>라는 가정을 하면 빠른 사람도 느린 사람이 가진 힘의 도움을 받는다면 생존에 훨씬 유리해집니다. 두 사람이 서로 협동해서 다 같이 안전하게 생존하는 방법을 선택하겠죠. 물론 개인의 자유는 다소 제약을 받습니다. 빠른 사람이 40Km로 달리고 싶어도 느린 사람과 함께 다녀야 하니 40Km로 달리고 싶은 자유는 20Km로 달려야 하는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이 누리고 싶은 자유와 다 같이 생존하는 평화로운 삶을 원하는 평등의 기본 개념입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개인의 자유는 억압받습니다. 이는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생존에 더해서 집단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 권리가 있기에 평등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이를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나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만일 어떤 조직이 구성원의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불평등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구성원은 그 조직에서 이탈하겠죠. 이는 동호회든 국가든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체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불평등한 구성원을 대체로 평등하게 조정하는 게 조직의 역할입니다. 자유와 평등은 그냥 공존하는 게 아닙니다. 적당한 견제를 조건으로 적당히 공존 하는 것이죠.

 

이런 평등을 매우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기득권 세력과 자본가입니다. 자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한히 누리고 싶어 합니다. 무한한 자유의 세계를 예로 들면 길을 가다 소변이 마려우면 그냥 거리에서 바지 내리고 소변을 보면 그만입니다. 애써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의 신체(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가장 좋죠. 이는 자연계의 법칙이자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입니다. 중세 봉건시대의 왕족이나 귀족은 이런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았습니다. 모든 권력이 왕과 귀족의 손에 있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죠. 그러다가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 혁명을 거치면서 나타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기존 권력]과 자본가가 결탁을 하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만 소외됩니다. 초기 산업화가 폭발적으로 팽창을 하는 시대에는 자본가의 경제적 자유가 엄청났습니다. 그러니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식민 시대가 도래하고 1,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전 인류가 휘말리게 되었죠. 이후 등장하는 독점자본주의는 공룡처럼 거대해진 자본주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자본가의 자유의지를 그냥 두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우선 시장을 선점한 자본주의는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을 철저히 막습니다. 독과점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의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밥 한 그릇을 10만 원에 팔아도 어찌하지 못합니다. 독과점이니 밥을 파는 다른 가계도 없습니다. 거대 자본은 소규모 자본을 철저히 먹어 치웁니다. 이 역시 자본의 독점화라는 기형적인 산업 형태를 만듭니다. 이 피해도 모두 고스란히 일반 시민의 경제적 부담으로 나타납니다. 아주 가까운 예가 배달 비용의 상승입니다. 배달 시장이 독점 자본화되면서 비용을 상승시키는 일이 나타납니다. 물론 코로나라는 특수성에 따라 시장 규모가 커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현상중 하나가 시장이 독점화되고 나면 소비자의 지출 비용이 증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를 적절히 견제하는 사회적 규율이 필요하게 됩니다.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맞추기 위해서 사회주의라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는 법. 자본가의 상속에 많은 세금을 부여하는 법. 노동 착취를 막는 법.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 법. 이 모든 법률이 바로 사회주의 이념을 기초로 하는 입법입니다.

지난 2013년 3월 이명박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에 재벌 기업 참여를 막는 법안을 시행했습니다. 사회주의식 입법의 한 형태로 봐도 무방합니다. 5조 원 규모의 단체급식 시장에는 삼성과 현대, 신세계 등 재벌 기업 외에 4500개의 중소기업이 존재합니다. 민간단체급식 시장은 막대한 힘을 가진 재벌 기업이 차지했고, 중소기업이 공공기관 급식 시장을 나눠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2016년 9월 대형 공공기관 급식에 재벌 참여를 허용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자본가를 위한 입법 활동이죠. 기업을 살린다는 규제완화라는 틀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틀 속에 담는 내용물에 문제가 있는지는 더 많은 사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어쨌든 한국 수자원 공사는 2017년 7월부터 급식 위탁업체를 중소기업인 한울 푸드에서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변경했습니다. 중소기업 업체인 엘에스씨의 대표는 <1인단 단가가 4천 원에 불과한 단체급식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 이런 조치들로 인해서 단체급식 시장은 완전 자유경쟁 체제가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대기업의 막대한 자본에 의해 쓰러지는 중, 소 기업은 하나, 둘씩 늘어났고 결국 해당 산업은 대기업에 의한 독점화된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이론은 18~19세기 유럽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정립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당시 사회상을 알아봤었죠. 봉건시대부터 근대시대까지 서민들은 착취에 몸부림쳤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연구된 게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이런 착취의 근본 원인을 계급에서 찾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정치적 계급.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경제적 계급. 이런 계급으로 인해 고통받는 계층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계속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거죠. 그래서 계급구조를 없애고 모든 인간이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이루면 사회 갈등이 해소된다고 보는 개념입니다. 사회주의는 봉건주의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이념입니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계급혁명이라 하고 노동조합 투쟁을 계급투쟁이라 합니다. 노동조합의 호칭을 조합원 동지나 위원장 동지로 표현하는 이유도 바로 노동조합의 근본 이념이 사회주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합원은 평등하기 때문이죠. 위원장은 조합원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조합원이기 때문에 위원장 동지라고 합니다. 위원장님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 방법인 거죠. 조합의 힘은 표현 방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의지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조합원의 권한을 위임받아 활동하는 위원장에게 진정 힘을 실어주는 것은 위원장님을 통한 대접보다 조합원의 깨어있는 의식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글로벌이란 용어 아시죠? 불과 얼마 안 되었습니다. 각종 언론과 기업에서 외치던 공통된 주제가 글로벌이었습니다. 글로벌은 신 자유주의 개념에서 출발 한 경제용어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세계가 일일생활권에 들어갔다.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니 그만큼 기업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진다. 는 정도의 의미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뜻은 따로 있습니다.

 

세계경제가 공황 상태에 빠진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신 자유주의는 산업 자본이 더 이상 내수 기반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내수 시장으로는 자본가의 이익을 취하는데 한계가 분명합니다. 기업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몸집을 불리는데 내수 시장으로는 기업이 커지는데 제약이 있는 거죠. 그래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18~19세기 근대 시대처럼 식민지를 건설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치른 마당에 다시 전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서방 선진국은 식민시대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내수시장 덕분에 기업이 굳이 바깥에서 먹을거리를 찾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보호무역주의 아래에서 충분히 내실을 다진 선진국 기업은 내수시장이 한계에 봉착하자 서서히 바깥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신 자유주의입니다. 국가가 규제를 통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장벽을 없애 경제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신 자유주의는 재산권을 보호하고, 무역 규제를 완화하며, 국제 금융의 자유화를 추구합니다.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 바로 우리나라였죠. 섣부른 개방 정책으로 말미암아 결국 IMF라는 경제 식민시대가 도래했었죠. 우리가 익히 들어온 글로벌이라는 단어의 속 뜻은 바로 경제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자본가에 의한 자유주의 경제 개념이었습니다. 물론 이 용어는 의미가 확장되어 현재에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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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한없이 자유롭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마음껏 누리고 싶은 자유가 자칫 사람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하는 문제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계급 사회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경제적 계급주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 계급주의의 끝판왕이 바로 자동차의 등급입니다. 경차가 대형 외제차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경제 계급주의에 따른 산물입니다. 그렇기에 차량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가 다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듯 누리고 있지만, 만일 도로 교통법이라는 사회적 장치가 부재해 경제적인 완전한 자유가 실현되면 많은 사람은 다시 자본가의 노예로 귀속되는 봉건 시대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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