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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2 글연습

NEOKIDS

13.02.03 21:03:42추천 1조회 870
2013-02-02 글연습


이틀동안 내리던 비가 멎고 햇살이 모습을 드러낸 토요일이었지만, 기온은 도로 겨울로 돌아가 있었다. 매서운 바람과 청명한 햇살이 묘한 댓구를 이루는 홍대 앞 거리의 한 구석에 그는 서 있었다. 
철지났지만 그에겐 편한 골덴 바지와 같은 색의 누런 점퍼를 입은 그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다양한 걸음걸이로 걷고 있었지만 그는 그 속에서, 획일성을 읽어내고 있었다. 예컨대, 누구나 다 똑같은 검정색 레깅스에 국부만 살짝 가려주는 짧은 타이트스커트를 덧대 입은 스타일이라든가, 스스로 해골 표본이라도 되어 보이려는 듯 살에 달라붙게 입은 남자들의 스키니진 같은 것이 그러했다.
늦겨울의 오후, 거리는 살아있었고, 생동감은 칼바람 속에서도 지나치게 빛났다. 그는 잠시 담배 연기를 날리며 눈을 감았다. 바쁘게 오가며 정신없이 즐기고 광속으로 변화하는 거리와 그만큼이나 변화하고 있을 사람들의 속에서, 정체된 시간과 자신을 느끼며 박제처럼 서 있는 자신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등 뒤로 물감이 지저분하게 묻은 패딩을 입은 두 여학생이 깔깔거리며 그를 지나쳤고, 작업 중이었을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는 뿌듯해졌다. 누군가는 나아가고 누군가는 머물러 있다. 머물러 있다는 것에 조바심을 내기도 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저며오는 칼바람으로 인해 얇은 옷을 입은 자신의 객기를 살짝 후회하며, 그는 담배를 끄고 다시 분주히 걸었다. 이미 책으로 꽉 찬 자신의 가방에 또 책을 사서 우겨넣고,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둘러보았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피곤함이 느껴지자 그는 잠시 PC방에 있기로 했다. 
자리가 없어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들을 보며 그는 자신의 판단이 그들보다 조금 더 빨랐음을 감사했다. 주체할 수 없는 시간과 다시 온 추위를 피하기 위해 어둡고 담배냄새가 진동하는 공간으로 온 젊음들은 음습하게 모니터를 향해 웅크리고 있었고, 그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듯 한껏 의자 뒤로 몸을 눕혔다. 전에 했던 FPS게임을 켜고 잠시의 시간 후, 그는 누군가의 캐릭터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상황을 즐겼다. 예전 같으면 화가 났을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는 자신을 느끼면서. 
기다렸던 약속시간은 어느 사이에 다가왔고, 그녀로부터 일이 끝났다는 문자가 도착하자 그는 급히 자리를 떴다. 그가 기대를 포기했던 선물을 들고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벤트 행사로 그녀의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옷 선물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반갑게 그를 맞았지만, 이내 새로 산 부츠 때문에 발목이 아프다며 징징댔다. 그는 일단 앉을 수 있는 근처의 모든 곳을 생각했지만 그곳들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골목 구석의 까페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의 후배는 조금 뒤에 도착했다. 그의 후배는 과장이 되어 노조에서 탈퇴했다며 요즘 조금 우울한 심경이 되어 있었다. 돈은 더 벌지만 이제 보호막이 없는 생활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에게는 부럽지도 흥분되지도 않는 그저 후배의 사건일 뿐이었다. 따뜻한 차가 나오고, 좁은 공간에 사람들과 조명으로 인해 더워 늘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초코라떼를 들이켰다. 두 사람은 그에게 나이 든 노인네 같다고 놀려댔다. 
떡볶이 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 포만감에 그와 그녀와 후배는 잠시 자리에 앉아, 자동차와 세상과 좋은 미국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수다 후에는 각자의 집으로 가는 길만이 남아 있었다. 
추운 칼바람을 맞으며, 그는 그녀가 선물로 준 옷을 껴입었고, 그것은 상당히 따뜻했다. 그는 집으로 가면서 채팅으로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했다. 어쩌다 잘못 누른 그녀의 프로필 대표 글귀에는 ordinary miracle이라고 써져 있었다. 평범한 기적이라. 
그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자신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나이가 들었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변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 그는 나이듦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녀를 사랑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정열을 바칠 대상으로는 충분했다. 키는 작지만 볼륨감이 있는 몸매였고, 성격은 내성적이라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는 스스럼이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런 성향을 방어기제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모든 것에서 나무랄 바 없었고, 모든 것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약동감이 넘쳤다. 자신에 비해 과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쇼펜하우어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열을 가지지 않았다면 인류는 멸망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류의 정열을, 그 역시 6년 전쯤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제 다시 그런 정열을 가질 수 있는가 하고 자문하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그런 때는 오지 않는다, 하물며 다시 그런 감정이 생길 턱도 없다, 그런 자신이 된 것이 우울하리만치 성숙해지고 현명해짐으로 인한 일종의 행복인지, 아니면 여전히 큰 불행 속에 있는 것인지를 그는 알 수 없었다. 화도 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자신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 있는 것. 
그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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