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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100-001

NEOKIDS

16.06.12 02:04:34추천 0조회 690

단편 100-001

 

 

 

 

너는 나고,

나는 너야.

 

 

누군가가 자꾸 이렇게 속삭여. 그저 무시하고 살아왔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어.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건, 누구라도 무시하고 살 수 없어. 처음엔 병원을 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게 더 두려워졌어. 왜냐하면,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목소리거든.

 

나의 삶은 평범하고, 멀쩡했지. 대기업의 공장에 있고, 돌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지겹긴 해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없다는 것에 감사했고, 운좋게 회사 기숙사에 살고 있기도 했어. 외출도 하고 돈도 조금씩 써보지만 거의 전부는 저축하기. 뭐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살아가잖아.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네 어쩌네 해도, 결국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굴지만, 실은 자신이 선택한, 노예의 삶이니까.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나의 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가 줄어들었어.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 목소리가 들려오면 입을 닫아버리곤 했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지고, 실적의 문제가 아닌 회사 내에서의 관계를 문제 삼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어. 그래도 날 내쫒는다든가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법이란 게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도 입히지 않는 한 날 어떻게 할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의 위에서 나를 보는 눈이 점점 심각해져 가더군.

 

처음엔 내가 일하던 부서를 바꿨어. 일도 그동안 익숙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게 주어졌지. 너무 하지 않으냐고? 원래 회사는 그래야 하는 거야. 이게 당연한 거라고 배웠었지. 오히려 너무 오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 실적을 맞추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겨우겨우 적응할 때쯤에 갑자기 또 부서를 옮기라는 거야.

 

그 때쯤에서야 눈치 채기 시작했지. 뭔가 이상하다고.

 

 

너는 나고,

나는 너야.

 

 

그 목소리를 외면하며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렸지만 돌아오는 건 이상한 이야기들 뿐. 이제는 실적이나 뭐 그런 것들이 필요 없는 한직으로 밀려났어.

 

그 때까지만 해도 회사에서는 이런 나를 파악하고 내게 맞는 업무를 준 거다, 내가 열심히만 하면 나는 원래의 부서, 아니 그 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회사가 나를 단련시키려고 이러는 거다, 등등등. 온갖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했어.

 

하지만 나는 점점 전혀 그런 희망들과는 상관없는 곳으로 밀려나고, 일주일 만에 부서가 바뀌는 일이 잦아지고, 6개월이 지난 지금에는 빈 책상에 앉아 벽을 마주 보고 앉아있게 됐지.

 

받은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제발, 그만.

그만하라고!!!!!

 

나는 벽을 주먹으로 쳤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안에서 끓어올라서, 그 목소리에게 화를 냈어. 하지만 그 목소리는 나였으니까, 나는 내게 화를 내고 있던 모습이었지. 그게 더 이상하고 화가 나서, 더욱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어.

 

그리고 그런 내 곁으로 몇 사람이 다가왔지. 이런 저런 것들을 묻고 있었고, 어깨를 다독이는 것도 같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내게 전혀 닿지 않았어. 그러다 느닷없이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누가 망치로 쳐버린 것처럼, 떠오른 거야.

 

난 이런 이야기들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내 곁으로 와서 묻는 사람들의 질문은.

명백하게 내 상태를 알고 있는 자들의 말이었어.

그들의 질문은

 

혹시 또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이거였거든.

 

나는 그들의 얼굴을 멍하니 돌아보고, 진정되었으니 이제 괜찮다는 듯한 손짓으로 그들을 제지해. 나는 그 틈에 그들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어. 그 얼굴들을 외워두고는 자리에 앉아 때를 기다렸지.

 

그들은 사무실 안의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가 일하는 듯 했지만, 실은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의 움직임은 모두 시간이 딱딱 맞춰져 있지. 시간이 되면 자리를 뜨고, 시간이 되면 자리로 돌아오는.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일어나.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 따라오고 있어. 사실은 그렇지 않은 척 위장하면서. 화장실은 내가 일하던 작업장을 거치게 되어 있어. 작업장을 지나가면서 나는 평범하게 구경하는 것처럼 눈길을 이리저리 돌린다. 드디어 내가 알고 싶던 걸 확인하지만 날 따라오는 자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태도를 꾸며놓지.

 

사무실에서 나간 자가 작업장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걸 확인.

시간 맞춰 나간 자들은, 이 작업장을 감시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거야.

 

 

너는 나고,

나는 너야.

 

 

무슨 말이야?

 

나를 감시하는 자들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게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에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이 목소리에게 대답을 해본 적이 없어. 그저 거부만 해왔을 뿐.

 

그러자 그 목소리가 한동안 사라진다. 꽤 오랫동안 사라지는 것 같아.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F-365.

 

그게 뭐지?

 

F-365.

 

그게 뭐냐고.

 

F-365.

 

F-365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뭔가 의미가 있어. 단말기가 필요해. 나는 다시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어느 작업장이든 공용 단말기는 하나씩 있지.

 

화장실을 가는 척 하다가 모퉁이를 돌자마자 기계 사이로 몸을 숨기고는 주변의 공구를 하나 집어서 기계 속으로 집어던진다. 기계는 오작동을 일으키고,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한다.

 

날 쫒아오던 자가 패닉에 빠져 동료들을 부르려고 하는 모양새. 나는 그 틈에 공용 단말기로 다가간다. 검색창에 커서를 놓고 자판을 누른다. F-365.

 

회사의 지도가 느닷없이 뜨고, 회사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방 하나가 불빛이 깜박이는 것처럼 표시된다. 원형으로 둘러쳐진 회사 중심부의 여러 방 중 하나, F-365. 그제서야 생각이 난다. 이 공장에서 최고로 승진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 F동.

 

갑자기 온 사방에서 난리가 나고,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화장실 입구로 뛰어가 일을 마치고 나온 것처럼 위장한다. 나를 감시하던 자가 다른 동료들에게 고장난 기계를 맡겨두고 다시 나를 따라온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그 방으로 갈 수는 없어. 날 따라오는 감시를 떼어낼 수는 없으니까. 퇴근은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아있다.

 

하려면 내일 아침, 출근이 이루어지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경비는 삼엄할까? 혹시 거기까지 가는 별도의 통행증이 필요한 건 아닐까? 분명히 그럴 거야. 승진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 한 번은 해봐야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운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고 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옷을 입고 출근을 서두른다. 패스카드를 대고 작업장 안으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척일 뿐이다. 바로 옆의 통로로 빠져나간다.

 

첫 번째 벽에 부딪힌다. 패스카드가 필요한 문. 나의 패스카드를 인식장치에 대어본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거부당한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 절망이 잠깐 나를 휘어감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린다. 문을 지나자,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있던 곳은 B동. 원형으로 생긴 회사의 물류선적장이 A동으로 가장 바깥이고, 작업장은 B동이다. 거기서 지금 C동으로 들어와 있다. 그리고 D동, F동까지 들어간다. 들어가는 동안, 내 패스카드가 인식장치에 인식이 되고 있다는 것은, 둘 중 한 가지. 누군가가 함정을 팠거나,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거나. 나는 그게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F동에 들어서자, 쭈욱 둘러쳐진 사무실들이 압도적으로 보인다. 출근하는 자들의 무심한 눈빛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나는 당연히 여기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번호를 찾는다.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방번호는 F-1부터 시작하고, 원형이니까 F-365는 거의 반대편에 있다.

 

한참을 걷는다. 번호가 하나씩 가까워져 갈 때마다 나는 뛰고 싶은 생각이 든다. 머리 위로 보이는 CCTV의 카메라들에 내 얼굴이 비춰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더욱 그렇다.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 아직 내가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걸 경비들이 눈치채거나 하는 낌새는 보이지 않으니까. 어쩌면, CCTV마저 제어해서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번호는 점점 가까워져 간다.

 

F-363......

 

F-364......

 

F-365.

 

나는 방문에, 패스카드를 들이민다. 녹색 불빛과 함께, 문이 열린다. 나는 그 방안으로 들어간다. 결벽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하얗게 칠해진, 마치 쪽방처럼 생긴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사람도, 책상도, 단말기도, 서류 캐비넷도, 전화기도.

 

그냥, 완전히, 텅 빈 공간일 뿐이다.

 

실망이 덮쳐온다.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왜 그 목소리는 이렇게 텅 빈 방으로 날 인도한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다른 가능성이 눈을 뜬다. 그래,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니까 여기까지 오라고 한 거야. 분명히 여기에 뭔가가 있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벽을 매만지게 한다. 양 옆의 벽을 한 번 만져보았지만 의미가 없다. 양 옆의 벽은 그 옆의 방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눈앞에 마주보이는, 원형의 안쪽을 향한 벽.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벽을 만진다.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구나 싶어 허무해지는 순간. 그러면서 내 손이 벽의 어딘가에 닿았던 순간, 벽은 거대한 입을 쩍 벌린다. 그리고 그 안의 통로를 허락한다.

 

길고 긴,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은 느낌으로,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한 10여 분 정도 내려가자, 탁 트인 곳이 나오고, 유리벽으로 만든 투명한 엘리베이터가 나를 맞이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유리창을 통해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인 것은,

 

거대한 공장이었다.

 

뭔가가 쭉 늘어서 누워있는 모습의, 뭔가를 생산하는.

나는 그 늘어서 누워있는 것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는다.

거기엔 인간들이 누워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그것들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인간들이다.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누워 있다. 여자도, 남자도,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팔에는 바코드와 인식번호가 쓰여져 있다.

나는 혹시나 싶어 내 팔을 본다. 내 팔엔 그런 것은 없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 나아간다.

 

출근시간이 꽤 지나가고 있지만, 거길 드나드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누워있는 침대 같은 기계 모듈 하나가 피스톤의 힘에 의해 통째로 들려진다. 그리고 상부에 설치된 레일로 얹히더니, 저 편 어딘가로 실려 사라져 간다. 사람이 드나들 필요가 없이 자동화된 것인가.

 

그 기계 침대 무리들의 한 가운데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고 헤메고 있다가, 나는 바닥에 들어온 불빛을 확인한다. 옆의 통로를 보니 이 불빛은 들어와 있지 않다. 나는 조심스럽게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겨본다. 불빛이 나를 따라온다. 이 바닥의 불빛은 나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 목소리의 주인이겠지.

 

불빛을 따라 이동한다. 다 세지도 못할 침대들의 곁을 지나, 더 안쪽으로 향한다. 그 쪽에 또 하나의 통로가 나온다. 그 곳은 더 어둡고 비좁게 되어 있다. 양 옆의 벽을 보니 틈들이 쭈욱 늘어서 있다. 다중의 격벽을 닫기 위한 구조처럼 보인다.

 

조금 어두침침한 공간. 몇 걸음 걷자 자동으로 조명이 들어온다. 그리고 내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다중의 모니터들, 수없이 체크되는 정보의 그래픽들, 복잡하게 얽혀서 자리 잡은, 내 몸통 굵기 정도의 전기선의 뭉치들. 그리고, 그것들이 모인 한 가운데에, 한 사람이 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유롭게 서있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기계 뭉치 속에 찌그러져 박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본다. 나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머리는 완전히 삭발된 채로 전선들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고, 눈에는 바이저 같은 것이 씌워져 있으며, 귀와 코, 입 안에까지 전선이 쳐박혀 있는 상태이다. 기계와 거의 한 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 사람은 거기에 잡혀있다.

 

 

너는 나고,

나는 너야.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뜻이야. 난 잘 모르겠어.

 

 

너의 영혼은,

내 영혼이야.

 

 

내 옆으로 즐비한 모니터 중 하나가 다가온다. 그 모니터에 영상 같은 것들이 뜬다. 단편적이고 맥락이 잘 파악되지 않는 그 영상들은,

 

그래, 이 사람의 기억처럼 느껴져.

 

작업복을 입고 씨익 웃으며 화면을 쳐다본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 활기찬 성격. 평가서에는 순종적이라는 글씨가 확대된다. 면접을 보고 있다. 그리고 대여섯 명의 건장한 남자들에게 끌려나간다. 그의 가족들 계좌에는 그의 사망에 대한 위로금이 전달된다. 그러나 그건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푼돈 중의 푼돈이다. 납치당한 그는 처음으로 이 지하의 공장을 본다. 두려움에 영상의 시선이 흔들린다. 그의 팔에 주사기가 꽂힌다.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온다.

 

적합인자 4호,

이번엔 성공해야 되는데.

밖에도 샘플은 충분해요.

그래. 이렇게 다루기 쉬운 놈들을 찾기도 어렵지.

말 잘 듣고, 딴 생각 안하고. 노예 같은 놈이야. 완벽한 머저리라고. 구역질이 나는군.

문제는 잘 덮어지겠죠?

그럼. 회사가 그렇게 허술한 곳인 줄 아나.

이런 멍청한 놈들은 이렇게 사용해주는 게 딱이야.

 

곧이어, 수많은 그래프들이 나온다. 누군가들이 프레젠테이션 같은 것에서 사용했음직한 그래픽의 장면들. 사람의 모습이 나오고, 사람의 머리 모양이 나오고, 그것이 침대들에 화살표로 연결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포장되어 실려나가거나 여기의 B동으로 옮겨지는 걸 보여주는 그래픽들.

그것들이 천천히 지나가는 동안, 그 내용이 마치 클로즈업되는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또렷이 떠오르는 순간.

 

그리하여, 그 영상의 마지막에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팔에 바코드가 새겨진 채 벌거벗고 누워 잠자는 듯한 내 모습이 나오는 순간.

 

그 내용이 뭔지를 완벽하게 이해한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이제 그 말뜻의 의미를, 나는 온 몸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깨닫고 있다.

 

나의 영혼,

 

나의 마음,

 

나를 움직이고 내가 내 삶을 선택하게 하는 모든 성격과 기질,

 

전부 ‘그’에게서 복사된 것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만들어진 인형이며, 이 자의 영혼과 성격, 기질이 주입된 꼭두각시였다.

 

눈앞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이 세상이 현존하는 것인지조차 감각이 오지 않는다. 나는 여기 있는데, 여기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니, 여기 있고 싶지도 않다.

 

 

여기, 나갈 수 있게, 해뒀어.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는다.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웅크린다. 너무 떨려서, 혼란스러워서, 두려워서, 대답할 기분이 아니다. 내 존재 자체가 거짓이고 기만이었는데, 도대체 왜 대답을 해주고 무엇을 위해 살아간다는 말인가.

 

 

나, 이제 곧, 폐기 예정.

고마워.

들어줘서.

 

 

계속 목소리가 울린다. 아마도, 그 목소리조차 겨우 쥐어짜낸 것이리라.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전달할 수 없어, 그저 자신의 영혼이 복사된 존재들을 향해, 데이터화할 수 없는 한조각의 의식을 전달하느라, 있는대로 힘을 쥐어짜내어 마지막 얘기들을 계속 던진 것이리라.

 

동정심과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치솟는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겨우 손을 뻗어 그 사람의 얼굴을 만지는 것뿐이라니. 눈물이 그의 마지막 모습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마지막, 할 말, 있어.

 

 

6개월 후.

그때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내 기능이상은 이제 그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아마도, ‘그’가 폐기되고 난 후 내 기능이상은 완벽하게 정상을 회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의 영혼을 주입한 모델들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감시하는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존재일까? 아마도, 만들어진 것까지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영혼은 다른 자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설사, 같은 모델이라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우리 같은 복제품에겐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어주느냐, 듣지 않은 척 계속 삶을 이어가느냐. 아마도 대다수는, 듣지 않은 척 하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아직 고민은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내 복제된 영혼은 듣는 것을 선택했다. 복제품이지만, 그저 인형일 뿐이지만, 그 선택을 했다. 그것이 나를 달라지게 만들었고, 인형이 아닌 삶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내가 희망하던 미래란 이제 없다. 그것이 전부 다 허상일 뿐이라는 것도 뼛속 깊이 이해했다. 어떻게 살아도 나는 여기서 끝날 것이다. 그저 여기서 생을 마감하게 될 뿐인 노예다. 내가 선택한 척 하고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는 노예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준비하고 있다.

 

내 영혼의 주인이었던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

 

어려울 것이다. 힘들 것이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여기서 죽는다. 다를 것은 없다.

 

다를 것이 없다면, 해낼 것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야

나는 여길

 

부숴버리고 싶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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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소설에도 올려보았습니다. 그 '악명높은' 네이버 웹소설이요 ㅋㅋㅋㅋ

괜찮으려나 싶어 정보를 찾아봤는데 으아......

로맨스 편중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말에 작가 수준들이 조낸 낮다는 말만 듣고

 

걍 지르고 있습니다 ㄲㄲㄲㄲㄲㄲ

 

희망고문 같은 것도 아니고, 이런 공간이면 연습하긴 좋겠다, 라는 게 생각의 전부입니다. 

물론 여기도 좀 마찬가지구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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