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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했던 형 이야기 Vol.[4]

한국조폐공사

21.09.24 11:26:36추천 10조회 2,537

자대를 배치받기 전 훈련소에서 마지막 전화는 미리 외워 두었던 형의 전화였고, 다행히 형은 한번만에 받았다

 

형 : 여보세요

 

덕훈 : 형 저예요. 전화좀 받아주세요 ㅎㅎ 이거 콜렉트콜이라 ㅎㅎ

 

형 : 아 덕훈이니? 오랜만이구나~ 벌써 전역했어?

 

덕훈 : 형 저 지난달에 입대했는데요 ㅋㅋㅋ. 지금 훈련소에서 전화하는거예요

 

형 : 그래? 형이 요즘 시간개념이 없어서 ㅎㅎㅎ 농담이구, 어때 좀? 지낼만한 것 같아?

 

덕훈 : 네 뭐 아직 훈련소라서 크게 힘든건 없어요. 이제 담주에 자대배치 받으면 좀 힘들어지겠죠?

 

형 : 그렇구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아직 휴가 나오려면 많이 멀었겠구나

 

덕훈 : 의경은 자대배치받고 한달정도 있으면 보통 외박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연고지로 배치받아서 아마

 

다음달 후반기쯤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ㅎㅎ

 

형 : 아 그래~ 그때는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잘 보내고~ 좀 편해지면 학교로 놀러와. 형이 맛있는거 사줄게 ~

 

학기초라 바쁘다는 말을 조금 돌려서 말한 형은 언젠가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기약 없는 약속을 하였다

 

그래도 난 뭔가 바로 끊기가 아쉬워 형의 근황도 물었고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물었었던 것 같다

 

덕훈 : 마지막 학년은 좀 괜찮아요? 저번에 메신저 보니까 혜라누나랑도 괜찮으신것 같던데요 ㅎㅎㅎ?

 

형 : ㅎㅎ 뭐 그저그렇지. 요즘 형이 준비하는게 있어서 학점을 거의 안듣거든~, 어차피 학점도 거의 다 채웠구 학교도

 

잘 안나가~ 요즘 자취하고 있어갖구 ㅎㅎㅎ

 

덕훈 : 아 학교 잘 안나가시는군요 ㅋㅋㅋㅋ. 이제 졸업후에 취업준비 때문에 바쁘시겠네요 ㅎㅎ

 

형의 전공학부는 보통 4학년 초반부터 취업을 준비하기 때문에 3학년때까지 학점을 거의 다 들어놓고 그 이후는 공모전

 

이나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경우가 대세라 당연히 형도 일찍부터 취업준비 때문에 바쁠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형의

 

경우는 학점도 괜찮은 편이고 영어점수도 거의 만점에 가깝기 때문에 자격증 이외는 크게 준비할 건 없을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형은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뜻밖의 발언을 하였다.

 

형 : 응~ 형 의대 준비하고있어. 학기초에는 조금 바쁠것 같아서 혹시 연락 못받더라도 이해해줘~. 할 게 한두개가 아니라서 ㅎㅎㅎ

 

덕훈 : 네? 의대요? 형 수능준비하실 건가요?

 

형 : 아니 그건 아니구~ 학교 졸업하면 시험처셔 다시 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그거 준비하구 있어~~

 

사실 그런 제도가 있다고 얼핏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같아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대충 들은 바로는 보통 생명과학 쪽으로 전공한 학부생들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서울쪽 이름 있는 대학교의 학생들이라 학벌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어중간한 전적대 출신은 서류에서 많이 밀린다고 

 

들었고, 최종적으로 시험 난도가 드럽게 높아서 공부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했던걸로 기억했다. 결국 “그들”만의 리그

 

라는 인식이 강해서 생명을 전공했던(그때는 1학년) 나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지만…

 

때문에 처음 형의 말을 듣고서는 뜻밖이란 느낌이 들었지만 형의 공부 스타일이나 머리를 생각해보니 내가

 

걱정할 영역의 일은 아닐거라 생각이 들었다. 

 

덕훈 : 아… 형 완전 바쁘시겠네요 ㅎㅎ. 제가 가더라도 바쁘셔서 못만나는거 아닌가요 ㅎㅎㅎ

 

형 : 형이 그래도 덕훈이 오면 시간 내야지 ㅎㅎ 걱정하지말구 몸 조심해서 다음에 시간나면 한번 보자 ~~ 또 시간

 

나면 연락해~ 

 

덕훈 : 네 형 알겠어요! 또 연락드릴게요!!

 

형과의 전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나는 전화를 끊고서도 많은 생각에 잠겼다. 

 

미래의 일이야 알 수 없는 거지만 난 대학교에 가서 전공이 정해지면 자신의 수준에 따라 진로가 거의 결정되는 것이고

 

전공을 살리든 못 살리든 길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형의 전공이 결코 의대보다 수준이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4년간의 전공공부를 간단히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형의 신념이 확고했고, 거기에 대해 연연하지 않았다면 정말 대단한 결심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뭐 단순히 전공의 비전이 안보여 대안을 찾은 것이라 생각할 수는 있었지만 의대(의학전문대학원) 시험이 전공

 

무시할 정도로 만만한 시험이 아니였기에 이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였을 것이다. 형이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졸업하면 20대 후반인데 그 나이에 다시 수험 공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형의 결정이 어찌됐든 나와는 별개의 일이고, 형이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왠지 그 형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혹시 할 수 있을까라는 꿈같은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내 미래에 대한

 

최초의 고찰이였고, 그것이 훈련병 시절이긴 했지만 내가 참새 발톱만큼이라도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 자대배치 받고 지옥같던 생활을 하는 와중에 형의 생각은 자연스레 얼차려에 묻혀 갔고, 1년이 지나도록

 

형과의 약속은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다. 물론 외박과 휴가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은 많았지만 무엇을 했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고, 친했던 고참과 술 마셨던 기억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내 미래에 대한 고민 역시 묻혀져

 

갔고, 몸이 편해지고 사회복귀할 시기가 다가와서야 다시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복학에 대한 걱정을 하던 중 문득 형에 대한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지기도 하고 보고싶기도 했다

 

그리고 형과의 재회는 제대가 10여일 남은 시점, 외박때 걸었던 전화를 통해 다시 이어져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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